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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일하며 선禪을 닦으라

양평 상원사 용문선원장 의정 스님

글. 박사 사진. 하지권

의정 스님을 뵈러 가기 전에 스님이 하신 말씀을 찾아보았다.
올곧은 마음 하나로 굳건하게 걷는 어른의 등을 좇아가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더 묻고 싶은 것을 적기도 하면서.
그러다 스님의 다른 얼굴을 본 것은 스님이 차를 만드는 과정을 찍은 다큐멘터리에서였다.
BTN 미니 다큐 <차밭에 살어리랏다>는 뜨거운 가마솥 안에 몸을 기울여 차를 덖고,
덖은 차를 비비는 스님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노동하는 얼굴. 몰입하는 얼굴.
그 얼굴을 보면서, 나는 내가 들은 무수한 말들보다 더 무겁게 다가오는
‘말 없는 말’을 듣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스님이 차를 내주셨을 때 남다른 느낌이 든 것은 그 때문이겠다.
천혜의 명당이라는 양평 상원사에서도 가장 훌륭한 전망을 보여주는
큰 창가에 앉아 받아 든 차는 향기로웠고, 쓰면서도 달았다.
신기한 맛이었다.

하동 쌍계사에 작은 야생차밭을 가지고 있는 스님은
봄마다 일 년 먹을 양만큼 차를 수확해 직접 덖어 온다 하셨다.
우리가 마신 차는 백련에 녹차를 넣어서 숙성시킨 뒤 냉동칸에 넣어둔 것이라 했다.
작은 잔에 따른 차를 스님은 ‘선차’라 불렀다.
차를 마시는 것 자체가 수행인 것이다.

밥 먹는 것도 정진하는 시간이다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도 ‘차담’이라고 하잖아요.
절과 차는 각별한 관계인 듯해요.
스님은 특히 더 차의 역할을 중요하게 여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절에서 차를 먹기 시작한 데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어요. 차는 식물 중에서 가장 정신을 맑게 해주는 역할을 해요. 옛날부터 ‘좌선삼난坐禪三難’이라고, 선을 하는 데 세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망상 막기 어렵고, 졸음 막기 어렵고, 편안히 앉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차는 정신을 맑게 해주니까 망상과 졸음이 적어지죠.

또 차는 쓰고, 떫고, 달고, 시고, 짠 다섯 가지 맛이 있는데, 그중 쓴맛이 우리 심장을 주관해 줘요. 몸에도 좋은 거예요. 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수행과 화합, 둘입니다. 그리고 선도 종교니까 의식이 있어야 되고. 차는 이 세 가지를 다 충족해 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을 도야陶冶하는 것이에요. 그래야 수행도 되고 화합도 되고 의식도 됩니다. 인격을 갖추지 않으면 화합을 절대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차를 마시면서 제일 포인트를 준 게 인격 도야예요. 대참법문大參法問은 법당에 올라가서 법을 설하는 거고 소참법문小參法問은 인격 도야를 위해 일상생활 중에 얘기해 주는 거예요. 끊임없이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고. 방장스님은 그 얘기를 늘 차를 마시면서 해줘요.

1103년 자각종색 선사가 쓴 『선원청규』에는 차 마시는 방법이 상세히 나와요. 차 마실 때 네 가지 정신을 말합니다. 하나는 ‘은중’. 은은하면서 중후하게 마셔라. 그다음은 ‘긍장’. 긍정적이면서도 장엄하게 마셔라. 그다음이 ‘대묘’. 차 마시는 법을 만들어 놨으니까 그 방법대로만 마셔라. ‘중도’는 나한테도 집착하지 말고 차한테도 집착하지 말아라. 이렇게만 마시면 이게 수행이 안 되겠어요? 놀라워요. 정말 지혜로워요. 차를 마시면서 수행의 포인트인 인격을 도야하고, 저절로 수행이 되게끔 하고, 화합이 되게끔 하고, 의식도 저절로 되게끔 만들었잖아요. 우리 선원의 차 문화가 살아야 우리 선 문화도, 선도 살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스님은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상기병을 앓으면서 체력이 무척 안 좋아졌던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스스로 섭식으로 다스리면서 치료를 하셨다 했는데, 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스님께서는 차도 그렇고요, 섭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시죠.
수행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도 선방에 가서 공부를 할 수는 없지만 
생활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섭식을 통해서도 가능할까요?

선원에서는 먹는 걸 선식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음식 때문에 병이 나잖아요. 너무 좋은 게 많아서. 너무 많이 먹어서. 우리 선식은 현대인한테도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우리 선식은 아침에는 간단하게 죽을 한 6부 정도 먹어요. 낮에는 밥을 해서 정찬을 먹어요. 그때는 8부 정도를 먹으라고 그래요. 그리고 저녁에는 약석이라고 그래. 약으로 먹는다고. 저녁도 5부 내지 6부를 먹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밥을 먹고 다음 밥을 먹을 때는 배가 고파야 정상이에요. 소화를 다 시키고 다음 밥을 먹는 거야. 야식은 독이에요. 잘 때 배에 음식이 들어 있으면 밤새도록 오장육부가 활동을 해요. 쉬지를 못해. 병에 걸릴 수밖에 없죠.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욕심 때문에 인생이 고달픕니다. 그 욕심을 우리 불교에서는 다섯 가지라고 해. 재물 욕심, 색욕, 음식 욕심, 명예욕, 수면욕. 그중 제일 끊기 쉬운 것이 음식이에요. 오욕 중에서 한 가지만 자제하면 나머지 것은 쉽게 자제할 수 있어. 선식만 하면 음식에 대한 욕심이 점차 점차 사라져요. 그러면 나중에 나머지 네 가지 욕심도 쉽게 자제 돼요. 하나만 정복을 하면 나머지는 쉽다는 얘기야. 옛날부터 밥 먹는 시간도 정진하는 시간이다, 했어요. 차 마시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나가서 일하는 것도 공부하는 시간이에요. 일하면서 화두 드는 거야. 이렇게 하면 우리 생활 전체가 수행이 돼요.


간화선이 명상보다 쉽다

불교에서는 앉아서 참선을 하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스님은 앉아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누리면서도 선을 닦을 수 있다고 하시는군요.

우리 조사선祖師禪은 좌선坐禪보다는 동선動禪 위주예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이 선이다.”라고 주장을 했어요. 우리 일상생활이 선이게끔 만든 것이 우리 조사선이에요. 육조 스님은 오래 앉는 걸 싫어했어요. 무심無心만 되면 깨닫는다 하셨죠. 육조 스님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이 하나라고 해요. 계 따로 닦고, 정 따로 닦고, 혜 따로 닦는 게 아니야. 화두를 들면 그 자체가 계정혜 삼학이야. 계정혜 삼학이 한꺼번에 닦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화두가 ‘최상승선最上乘禪’이라고 그래.

화두를 들면 우리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선을 닦을 수 있는 거네요.

그냥 앉아서도, 밥 먹을 때도, 차 마실 때도, 일하면서도, 세수하면서도, 화장실에 가서도, 잠자면서도 그냥 화두만 들면 돼. 간절하게 화두가 들리면 계정혜 삼학이 거기에 몽땅 들어 있어요. 우리는 돈오頓悟라고 그래. 돈오. 무심만 되면 하루아침에 깨닫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제일 빨리 깨달은 분이 경허 스님이에요. 3개월 만에 깨달았습니다. 화두 든 지 3개월 만에. 우리 서산 스님은 화두 든 지 10년 만에 깨달았어.

우리 조계종의 중흥조인 태고보우 선사는 18년 걸렸어요. 무심이 되면 소리를 듣고도 깨닫고, 뭘 보다가도 깨닫고, 앉아서 좌선하다가 깨닫고, 일하다 말고 깨닫고 이렇게 됩니다. 계정혜 삼학을 하나로 보기 때문에 우리의 화두선은 아주 발달된 최상승선이라고. 아직까지 이거 덮을 만한 선이 없어요.

육조혜능 선사는 재가자를 더 중시하셨어요. 동선 위주의 선은 재가자들을 위한 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굳이 오랫동안 앉아서 수행을 해서 깨닫는 게 아니라 한 생각만 탁 돌리면 깨달음이다, 이렇게 우리 조사선을 만들어 놨어요. 일반인들이 쉽게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거예요. 그런데 이게 거꾸로 됐어. 지금 간화선이 어렵다고 생각을 해.

왜 간화선이 어렵다고 오해를 받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나도 답답한 거야.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옛날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현대인에 맞게끔 이걸 설명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원력을 세웠어요. ‘간화선 연구소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젊은 학자들을 모아서 현대인한테 맞는 간명한 설명을 연구해야겠다.’ 우리 간화선이 명상보다 더 쉬워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 간명한 선이 다 소화되게끔 얘기해 줄 수 있느냐,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스승, 둘째는 도반, 셋째는 환경

그런데 사실 해본 사람이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머리로만 공부한 사람은 안 되고요. 스님은 투병 과정에서 ‘동선’이 너무 중요하다는 걸 몸으로 깨달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 쉬운 걸 왜 몰라” 하실 수 있는데, 이건 단순히 옛날 교육과 젊은 사람들과의 차이가 아니라, 몸으로 겪어봐서 아는가와 아닌가의 차이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이 일단 해보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셔서 ‘문경세계명상마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셨던 거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이 좋은 간화선이 세계화가 됐으면 좋겠다.” 했습니다. 그때 고우 스님, 정명 스님, 임각 스님, 무현 스님, 혜곡 스님, 정찬 스님, 지환 스님, 영진 스님 등이 모여서. “앞으로 선이 인류 문명을 이끌어간다고 하니 세계명상마을을 준비하자. 세계적인 선센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다. 그걸 만들자.” 한 거지. 그 책임을 나한테 맡겼어요. 세계 30여 곳 이상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명상센터들을 40군데 정도 다녔어. 그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하는지, 무슨 공부를 하는지, 운영은 어떻게 하는지 전부 다 조사해 왔다고. 지금 명상마을 선원장 각산 스님도 그때 같이 다녔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명상을 주도해요. 명상으로 인류 문명을 이끌어가겠다고. 그런데 계정혜 삼학의 조화가 필요한데 서양 사람들은 계戒에 대한 관념이 전혀 없어요. 선정만 닦는 거야. 현대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서 병이 오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정신만 안정시켜주면 병이 낫거든. 그런데 계정혜 삼학 중에서 선정만 닦으니까 병 낫기 위해서 공부하는 꼴이 돼버렸어. 다들 걱정이 커요.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야.

우리의 절을 좀 더 잘 활용하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도 템플스테이를 많이 하고 있거든요. 그냥 쉬고만 오는 게 아니라 간화선의 기초라든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간화선의 핵심적인 원리를 배워서 가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용문선원은 재가자에게는 열려 있지 않죠?

용문선원은 수행자들만 오지. 하지만 선원을 만들어놨어요. 일반인을 위한 간화선 템플스테이 도량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오는 사람들에게 일러주기도 하고, 젊은 주지가 보좌도 해주면 좋을 것 같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목마른 것은 좋은 스승님 아닌가 싶어요.

스승이 제일 중요한데, 달마 스님의 『혈맥론』에도 “이 공부를 하려면 첫째는 스승이고 둘째는 도반이고 셋째는 환경이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건 지금까지 선지식이 똑같은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스승인 송담 스님도 그 얘기를 해요. “스승을 잘 만나야 된다.”고요. 출가를 하고 그 얘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봉선사 조실이었던 운허 스님께 가서 물었어요. “불교를 정말 잘 수행을 하려면, 진실하게 수행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러니까 운허 스님이 “사교입선捨敎入禪을 해라. 먼저 교학을 어느 정도 알고,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먼저 알고, 선에 들어가는 것이 옳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스님은 먼저 교학을 알게 해서 발심을 일으키고, 이후 선문禪門에 들게 했어요. 초보자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일단 불교책 좀 봐야 돼요. 어느 정도 기반을 마련해 놓고 선각자들한테 들으면 ‘아, 그렇구나!’ 하고 공감하게 돼요. 그러면 쉽게 스승도 찾고 불교에 쉽게 접근할 수가 있어요.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책이 있을까요?

수행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계종출판사에서 나온 『간화선』 책을 권해요. 수행의 방법이 총체적으로 나와 있으니까 한번 보는 게 좋습니다. 불교의 선禪 책을 보고 싶다면 『혜능육조단경』(김진무 번역, 일빛출판사)이 있어요. 그 책에는 『육조단경』 원문도 나오고, 해설을 잘해놨어요. 현대인들이 보기에도 괜찮고 총체적으로 불교와 선 문화에 대한 것을 다양하게 다뤄놨어요. 그것을 보면 아마도 선에 대한 이해가 많이 깊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를 끝내고 사진을 찍으며 좌선하는 스님의 얼굴을 보았다. 야생차밭에서 따온 찻잎을 덖던 스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참선하는 얼굴이었구나. 차를 덖을 때도, 그렇게 덖은 차 한잔을 마실 때도, 차를 내려놓고 고요히 앉을 때도, 끊임없이 화두를 든 수행자의 얼굴. 비로소 스님이 내게 건네주신 무수한 말 가운데 가장 무겁고 진실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의정 스님 양평 상원사 용문선원장. 선원수좌선문화복지회 대표이사로 간화선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간화선 지침서인 『간화선』 편찬위원,  『선원청규』 편찬위원장을 역임했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불교덕후’로도 유명하다. 방송과 일간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책과 문화를 소개해 왔으며, ‘책 듣는 밤’, ‘책 듣는 저녁’으로 대중과 만났다. 『나에게, 여행을』, 『가꾼다는 것』,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