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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라는 이름의 산에서

기독교신자 박미경·강희복 부부

글. 박현숙 사진. 현진

2016년 수덕사 템플스테이를 시작으로 박미경 씨는 최근까지 25개 사찰을 찾아 템플스테이를 했다. 템플스테이는 그가 어릴 적부터 좋아해 온 산을 닮 아있었다. 오르다 보면 시시각각 다른 자연의 공기, 소리와 풍경으로 감동을 주고 마침내 정상에 서면 산 아래에서는 상상도 못 한 정경을 선사하는 등산의 과정 또한 템플스테이와 비슷했다. 가을의 초입, 박미경 씨는 이제 삶의 도반처럼 느껴지는 남편 강희복 씨와 함께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으로 템플스테이를 떠났다.

찰나의 만남이라도 당연한 건 없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하여 옷깃만 스쳐도 억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인(因)이란 어떤 결과의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원인을, 연(緣)이란 그 원인을 돕는 외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일컫는다. 씨앗이 인이라면 토양, 비, 햇빛 등의 환경이 연이라 할 수 있다. 30여 년 전, 서울 처녀 박미경 씨와 부여 총각 강희복 씨의 첫 만남은 인연의 신비한 아름다움을 환기한다.

그 날, 그 버스, 그 사람, 그 대화, 그 마음-

부여 외가를 찾았다가 서울 집으로 향했던 박미경 씨와 고향 부여에서 서울로 가던 강희복 씨는 부여의 시외버스에서 서로 옆 좌석을 배정받았다. 나이가 같고 대화가 통했고 상대에게 마음이 갔던 두 사람은 2년여간 연애 후 혼인을 했다. 그 날, 그 버스, 그 사람, 그 대화, 그 마음.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차곡차곡 더해져 인연의 힘을 발휘했다.

“벌써 결혼한 지 34년 되었어요. 남편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했죠. 시어머니도 27년간 모셨고요. 사실 모셨다기보다는 도움을 받았어요. 시어머니께서 손자 손녀를 키워주신다고 합가했어요. 우리집은 늘 북적북적했어요. 시가와 친정 조카들이 방학 때는 물론이고 자주 놀러 왔거든요. 직장 다니며 아이들 돌보고 음식 해 먹이는 일에 부지런을 떨었죠. 그 와중에도 등산을 꾸준히 했어요. 예전부터 산이 좋았거든요. 어린 둘째를 업고서 첫째 손을 잡고 산을 오르기도 했으니까요.”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박미경 씨에게 10여 년 전 깊은 슬픔이 닥쳤다.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거동이 힘들어지셨고 남동생이 암을 진단받았다. 남동생은 시어머니보다 6개월 앞서 세상을 떠났다. 함께 시어머니를 돌본 요양보호사는 심신이 지친 그에게 휴식을 권했고 박미경 씨는 템플스테이를 생각했다. 2016년 템플스테이를 위해 처음으로 찾은 사찰이 수덕사였다.

“새벽에 선명상 체험을 하며 오롯이 나를 보는 경험을 했어요. 그간 잊고 지냈던 나에게 집중한 귀한 시간이었어요. 이후 기회가 되면 템플스테이를 했어요. 일상에 연결된 의무감의 스위치를 모두 꺼두고 나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그동안 25개 사찰에서 29번의 템플스테이를 한 박미경 씨는 오늘 템플스테이를 위해 충남 공주시 사곡면 태화산 자락에 자리한 한국문화연수원에 왔다. 그간 다녔던 사찰들이 고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라면, 이곳은 우리 전통 건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공간이다. 절제와 검박함을 건축의 화두로 삼아 이른바 ‘빈자의 미학’을 추구한 건축가 승효상의 얼이 담겼다. 한국문화연수원에서 7분쯤 걸어가면 마곡사가 있어서 현대와 과거를 한 번에 여행하는 이색적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연수원을 감도는 청신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마곡사로 향하는 길, 강희복 씨가 수줍은 듯 홍조를 띠며 “아내는 작년에 공무원을 명예퇴직하고 올해 간호대학에 들어갔어요. 59세의 나이에 150명 중에서 4등을 했어요!”라고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이 병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도움이 되기 위해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던 박미경 씨는 임종을 맞은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간호사가 되고자 한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가려져 있던 ‘사랑하는 마음’의 힘이 불러일으킨 변화였다.

“템플스테이를 하며 불교에 관심이 생겼고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불교대학에 다니고 정토회 경전반에서 2년간 공부했죠. 그 과정에서 사랑받고 싶어 했던 제 마음을 봤어요. 주위의 칭찬에 매달려 그것이 스스로에게 독인 줄도 모르고 살던 제 마음을. 사랑받고자 하니 늘 불안한 마음이었어요. 마음을 짓누른 육중한 자물쇠 같은 의무감을 덜고 자유로운 마음을 내니 그간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진심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달라진 나를 서운해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더 관계가 진실해졌죠.”



또 하나의 산, 템플스테이

오래 기억하고 싶은 내적 성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곡사에 이르렀다. 아침에 제법 굵게 내리던 빗줄기가 낮이 되니 보슬비가 되어 경내를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불교의 진리를 형상화한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대광보전을 찾아 삼배의 예를 갖췄다. 요즘은 아무리 어른이라도 허리 숙여 인사하는 정도가 일반적인데 예전에는 동년배라도 맞절을 하고 어른을 뵈면 큰절을 올리며 인사를 했다. 박미경 씨도 집안 어르신께 허리 숙여 인사를 하면 “아가, 옳게 인사해야지.”하고 다정히 바로 잡아주시던 시어머니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불교의 예법과 맥이 닿는, 상대에게 나를 낮춰 인사하는 전통을 박미경 씨는 아름답게 여긴다.

고목을 이어 만든 전각의 마루를 딛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무로 만든 전각의 바닥은 박미경 씨가 사찰에서 특히 좋아하는 것이다. 동트지 않은 새벽녘 서늘한 나무에 발을 디딜 때 정신이 번쩍 들기 때문이다.

“제 종교는 기독교예요. 여러 사찰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며 불교가 불편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서 감동했죠. 예전에는 소음처럼 들렸던 불전사물의 소리가 뭇 생명들을 향한 자비의 마음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마음이 뭉클했어요.”

템플스테이는 박미경 씨가 좋아하는 산을 닮아있었다. 비슷해 보여도 어느것 하나 같은 산은 없고, 하나의 산이라도 갈 때마다 색다르고 다채로운 감동으로 다가오듯 절도 그러했다. 새벽과 저녁에 올리는 예불을 비롯해 백팔 배, 연등 만들기, 사물 체험, 포행, 울력, 스님과의 차담 등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거의 다 체험하면서 박미경 씨는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치유의 힘을 키웠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템플스테이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동생들과 함께 천은사에서 휴식형 템플스테이를 했는데 한옥 체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 숙소를 비롯해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경관과 사찰 주변의 둘레길 등이 참 좋았어요. 그곳을 산책하는 내내 대화를 나누며 느낀 잔잔한 평온함이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어요.”

박미경 씨 부부는 세월을 켜켜이 보듬고 있는 마곡사 오층석탑, 2층으로 이루어진 대웅전 등을 둘러본 뒤 사찰 입구에 마련된 국가유산 방문 코스 기념지에 스탬프를 찍어 간직했다

탱크는 자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타임머신을 탄 듯 천년고찰 마곡사에서 현대적인 한국문화연수원으로 되돌아왔다. 2005년 건립 당시 대단위 기와 가마터 56기가 발견되었던 연수원에는 한국기와문화관이 있다. 충남에서 가장 큰 사찰인 마곡사 일대의 기와 생산과 보급 과정 등 을 살필 수 있는 박물관을 둘러본 두 사람은 이색적인 공간에서 명상을 했다.
환상적인 영상이 사면으로 펼쳐지는 공간으로서 색다른 명상을 할 수 있는 ‘비밀의 방’에서 명상을 한 뒤 마치 작은 영화관 같은 공간으로 갔다. 대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기와와 자연의 이미지를 보며 영감을 충전할 수 있는 ‘힐링 포레스트’에서 영화 주인공처럼 자세를 취해보기도 했다. 강희복 씨는 “마치 신혼여행을 와서 사진 찍는 기분이에요!”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부부는 높고 푸른 하늘과 생기 가득한 너른 잔디밭을 보며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낀다고 했다. 음과 양의 에너지처럼 서로 다르지만 어깨를 겯고 조화를 이루며 건축물을 보호하는 기와를 보며 부부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보기도 했다.

채 증발하지 않은 아침이슬로 발목을 적시며 한옥체험관으로 향했다. 한국문화연수원 본부장을 맡고 있는 금오 스님이 차담 시간을 내어주셨다. 스님은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가뜩이나 사춘기 소년 소녀처럼 웃음이 많은 부부의 웃음보를 연거푸 터뜨리셨다. 여러 차나무의 잎이 섞이지 않고 하나의 차 나무에서만 채취한 귀한 차를 내주시는 손길이 마곡사 계곡물처럼 시원시원했다. 학승 시절, 어른 스님께서 차 한 잔 주시기까지 주실 듯 말 듯하다가 긴 말씀을 한 시간은 하신 후에 마침내 차 한 잔 얻어 마셨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는 금오 스님의 일화는 부부를 웃음바다에 빠뜨렸다. 스님은 언제나 육근을 열어두고 느낌을 풍부하게 하며 살면 긍정적인 마음, 고마운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행복의 꿀팁도 전해주셨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59살의 나이에 간호대 1년생인 박미경 씨가 공부의 즐거움을 잊게 하는 시험의 괴로움을 토로하며 해결책을 여쭈었다. 스님이 “그 나이에 그런 용기를 낸 보살님은 탱크입니다. 탱크는 자갈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 어려움들은 그저 자잘한 자갈입니다. 잊지 마세요. 보살님은 탱크, 밀고 나가세요!”라고 하자 박미경 씨는 행복의 열쇠를 발견한 사람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스님과의 차담을 마치고 나오는 길 박미경 씨는 잊지 않으려는 듯 반복해 말했다

“앞으로 힘든 일을 만나면 되뇌어보려고요. ‘나는 탱크다, 나는 탱크다! 가슴에 꽂히는 좋은 말씀이에요.”

푸른 하늘 아래 서로 손을 잡고 연수원의 너른 잔디밭을 걸어가는 부부의 뒷모습에 발걸음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서두르지 않되 절대로 멈추지 않고 함께 나아가는 따스한 지혜의 풍경이었다. 두 사람이 자아내는 에너지, 어둠을 역전시키는 자비와 사랑의 기운을 그저 오래도록 느끼고 싶었다

 박현숙 자유기고가이자 인터뷰어. 한국의 전통문화와 자연을 사랑하며 오래된 미래, 지속가능한 가치를 꿈꾼다. 대를 이어 전통을 계승하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삶을 만났고. 계간 <한옥>, <코리아나> 매거진 등에 서 한국의 문화를 알려왔다.

한국문화연수원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1065(한국문화연수원 )
041-841-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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