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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행복

템플스테이 50회 참가자
신동천·민혜련 부부

글. 편집부 사진. 하지권

퇴직 후 상실감 템플스테이로 극복

“햇볕이 쨍쨍해도 좋고, 없어도 괜찮아요. 비가 와도 좋습니다. 있는 그대로 지금 이 순간을 느끼세요. 천천히 걸으면서 오감에 집중하되, 생각을 따라가지 마세요. 생각은 지금이 아닌 과거나 미래로 향하지만, 우리의 감각은 지금 이 순간 현재에 존재합니다.”

싱잉볼의 청아한 울림이 봄비에 젖은 도량을 가르며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수덕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초은 스님의 걸음을 따르는 얼굴들이 맑다. 싱잉볼의 울림에 집중하던 신동천(66)·민혜련(64) 부부가 문득 마주 보며 미소를 나눴다.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존재하는 우리. 템플스테이가 두 사람에게 준 선물 같은 가르침이다.

2017년 6월, 템플스테이를 처음 만난 순간은 그야말로 절벽 끝에 매달린 듯한 시기였다. 특히 38년 공직 생활을 끝내고 정년퇴직을 한 남편 신동천씨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한평생 몸담았던 직장과의 인연이 끝나 소속감이 사라지고 무력감과 상실감이 밀려왔다. 항상 바쁘게만 느껴졌던 규칙적인 일상이 멈추고 나니, 막연하게 비어있는 시간이 그를 짓누르는 듯했다. 마음이 답답하고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널뛰는 감정이 괴롭고 때때로 공허했다.

힘들어하는 남편을 곁에서 지켜보던 민혜련 씨도 함께 괴로웠다. 언제나 든든하고 곧았던 남편의 뒷모습이 흔들리는 모든 순간이 마음 아팠다. 남편의 힘든 시간을 함께하기로 결정하고 하던 일을 모두 정리했다. 그리고 어쩌면 인생의 전환기에 선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가평 백련사, 바로 인생 첫 템플스테이다.



이곳에서 두 사람은 잊지 못할 강렬한 경험을 했다. 이후 수년이 지났고 수많은 템플스테이를 참가했지만, 지금도 첫 템플스테이의 기억을 회상하면 눈물부터 터져 나온다. 남편 신동천 씨의 정년퇴직 이후 꼭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사찰의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스님들의 안내에 따라 사찰 예절을 배우고 예불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마련된 스님과의 차담 시간. 답답했던 마음은 자연스레 상담으로 이어졌다.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마치 토로하듯 이어지는 신동천 씨의 괴로움을 지도법사 선효 스님이 묵묵히 들었다. 그리고 A4 용지 몇 장을 건넸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그 종이에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괴로운 일, 화나는 일, 슬픈 일, 어떤 것이든 모든 고민과 생각을 하나하나 써서 귀가하는 날 가지고 오라고요. 텅빈 종이를 보니 처음에는 막막하게만 느껴졌죠. 그런데 괴로움의 원인을 틈틈이 생각하다보니 끝도 없이 써지더라고요. 쓰면서도 새삼 내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싶었습니다.”(신동천 씨)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 신동천 씨가 작성한 글은 무려 4장 분량이었다. 종이 한 장 한 장에 그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종이를 채우는 과정 자체만으로 그동안 외면했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다.
스님은 종이를 받고 다시 그대로 건넸다. 두 사람에게 각각 자신이 쓴 종이를 직접 태우고 오라며 경내 소지를 위한 공터를 알려줬다.

“제가 먼저 다녀왔고, 참 후련했어요. 종이를 태우는데 제 고민도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스님과 그 얘기를 하면서 남편을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도 남편이 오질 않는 거예요.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찾으러 갔죠.”(민혜련 씨)

불이 꺼져가는 소지처 앞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는 남편이 있었다. 복받쳐 오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에 민혜련 씨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부부는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조용히 다가온 선효 스님이 부부의 등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렇게 울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한번 그렇게 토해내 듯이 울고 나니까 새로 태어난 느낌이더라고요. 그때 태운 종이에 과거에 얽매여 있던 내 마음을 담아 시원하게 털어낸 건 아닌가 합니다.”(신동천 씨)

전국 사찰 다니며 마음 치유 경험

그때부터 부부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템플스테이의 매력에 푹 빠진 부부는 함께 전국 사찰 순례에 나섰다. 우스갯소리처럼 템플스테이 100회를 채워보자는 약속도 했다. 한번 참가하면 2박3일, 일주문을 지나는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지고 망상들이 눈 녹듯 사라졌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히 부부간 대화도 풍성해졌다. 템플스테이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일상의 웃음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어느새 템플스테이 50회가 넘어선다.

마음이 편해진 덕인지 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아내 민혜련 씨는 평생 몸이 약했다. 5년에 한 번꼴로 결석 때문에 호되게 고생을 해 왔는데 템플스테이를 다니면서 한 번도 결석으로 병원을 가본 적이 없다. 일상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지병들도 어느새 사라졌다. 신동천 씨는 성격이 확 달라졌다고 자평했다. “평소 조급한 성격과 못된 성질머리가 많이 나아졌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얼굴이 훨씬 편안해져 보기 좋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든 후에는 자식들과 손자·손녀들과 함께 템플스테이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아들 내외는 결혼 전 참가한 템플스테이에서 주지스님께서 ‘부부가 서로 구부리면 편하다’라는 의미를 담아 써주신 글을 신혼집에 걸어둘 정도로 좋아했다. 골굴사에서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선무도를 배운 손자는 이후 유도를 시작해 건강한 심신으로 밝게 자라고 있다.



사돈 내외와 일정을 맞춰 함께한 템플스테이도 남다른 추억이다. 부부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지인들도 많은데, 반응은 항상 폭발적이다. 뛰어난 자연환경과 어우러진 사찰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 전통문화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의 특별함이 템플스테이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사찰들이 산세가 빼어난 곳에 있으니 템플스테이를 통해 명산을 즐기고 국보급 보물과 문화재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숙소도 크지는 않지만 정갈한 곳이 대부분이라 주위에 추천하기도 좋아요. 종교와 상관없이 휴식과 힐링, 특별한 경험을 위한 최고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사찰들이 서로 다른 매력이 있으니 직접 경험해 보는 게 최고죠. 혼자도 좋고 함께하면 더 좋아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행복

템플스테이 참가 횟수가 늘어나면서 부부의 일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하루의 시작이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짧게나마 명상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매 순간 현재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면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과 감사의 마음이 하루를 채우게 됐다.

템플스테이의 편안함을 집에서도 이어가고 싶어 고민하다 보니, 차츰 묵은 짐들과 사용하지 않는 물건도 정리했다. 단순한 공간이 주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커서 생각이 복잡해질 겨를이 없고 집 분위기도 훨씬 아늑하고 편안해졌다. 그동안 막연한 두려움에 멀게만 느꼈던 ‘죽음’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가족 간 대화의 주제가 됐다. 최근에는 딸과 함께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했고, 장기기증 서약도 계획 중이다. 이 모든 순간이 부부에게는 기적 같은 변화다.

템플스테이로 인한 부부의 변화를 들은 수덕사 주지 도신 스님이 차를 권하며 “마음에 싹이 텄으니,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덕담을 전한다. 아직도 ‘죽음’이 숙제라는 부부 말에는 ‘찰나에 생과 사가 있다’는 말을 화두처럼 건넸다.

“오늘 저는 50년 도반스님을 보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건 적게 하건, 마음의 문제들을 다 해결하고 떠나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도반이 누운 관에 손을 얹고 정신 바짝 차리고 가시라고 했죠. 그 말은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다 비우고 자유롭게 떠나라는 의미예요. 불교에서 죽음은 잠시 멈춤일 뿐입니다. 너무 편안해지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그 또한 집착일 수 있습니다. 그저 지금처럼 순간순간을 잘 살아가시면 됩니다.”(도신 스님)

“드넓은 바다는 한없이 잔잔하다가도 거센 파도가 치고 잔물결이 되고 또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잔잔해지지만,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일 뿐 바다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라는 스님의 말에 부부의 표정에 가만히 미소가 번진다. 길지 않은 차담에도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 듯하다. 그러고 보면 매번 스님과의 차담은 유독 여운이 길다.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청정한 도량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기며 산책을 하다 보면 웃음이 절로 나지요. 여기에 마음을 울리는 스님의 말씀까지 더해지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의 템플스테이 여정은 진행형이다. 전국 사찰 대부분을 경험하고 나면, 그중에서도 특별히 좋았고 마음에 남은 사찰을 중심으로 템플스테이를 이어갈 계획이다. 도신 스님의 말씀대로 그저 있는 그대로 순간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다 보면, 그 모든 순간이 곧 일상이고 삶일 것이다.

 수덕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041-330-7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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