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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목공예의 정수

수미단

글. 노승대 사진. 하지권

영천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문양들

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숲이 기지개를 켜고 꽃은 다투듯이 피어오른다. 생명력 넘치는 숲에는 온갖 동물들이 밝게 뛰논다. 절집에도 봄빛이 찾아든다. 법당 안에도 꽃피는 곳이 있다. 사시사철 꽃이 피어 있다. 바로 수미단이다. 정성스레 다듬고 새겨진 꽃들 사이에는 온갖 중생들이 노닌다. 마치 화려한 봄날의 잔치 같다.

나무로 만들어진 수미단은 불교의식에 필요한 향로나 촛대 등을 배열하고 신도들의 공양물을 올려놓는다. 부처님을 모시는 단이기에 불단이라고도 부른다. 수미산 위는 하늘 세계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수미산정에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시는 모습을 연상해서 부처님을 모신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는 법당 중앙에 돌로 만든 좌대 위에 부처님을 모셨다. 주로 팔각으로 만들었고 아래, 위쪽에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으며 가운데는 좁다. 흔히 연화대좌라고 부르는데 수미산도 가운데가 좁고 위, 아래가 넓다. 그래서 이 연화좌를 수미좌라고도 부른다. 수미단도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가운데 조각이 들어간 부분이 좁은 편이다.

고려시대에는 나무로 만든 불상좌대도 나타났다. 이미 고려 불화에 나타나 있었지만, 실물로 보존된 것은 1점뿐이다. 바로 ‘수덕사 대웅전 목조육각수미단’이다. 수덕사 대웅전(국보)은 고려시대 후기인 1308년에 건축된 건물로 한국의 고려건축물 5점 가운데 가장 큰 건물이다. 법당 중앙에 모셔진 삼존불 가운데 중앙의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좌가 바로 고려시대 목조육각수미단이다.

수덕사 목조육각수미단 하부에는 육각의 받침돌이 설치되어 있다. 건축 당시부터 육각의 받침돌을 놓고 그 위에 수미단을 짜 올렸던 것이다. 목조수미단에 조각되어 있는 장식은 북한 황해도 자비산 심원사 보광전의 불단과 같은 양식이다.

심원사 보광전은 1372년 목은 이색이 쇠락한 절을 보고 중건한 건물로 수미단을 직사각 2단형으로 조성했다. 물론 윗단에 세 분 부처님을 나란히 모셨고 아랫단에 향로, 촛대 등 의식구를 배치했다. 이 불단에 장식된 금강저, 꽃이 꽂혀있는 화병, 모란, 구름 문양 등이 수덕사 목조수미단의 장식과 같다. 고려 양식을 그대로 이은 것이다. 더불어 고려 말기로 갈수록 부처님 좌대와 공양물을 올려놓을 수 있는 탁자가 일체형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꽃병 조각 위에 짧은 화살 모양을 거꾸로 연이어 늘어뜨린 조각이 6면에 전부 설치되어 있다. 우리가 홍살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화살을 거꾸로 장식해 놓은 모습이다. 이 홍살[紅箭(홍전)] 역시 왕릉을 보호하듯 부처님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 홍살은 고려시대 건축물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수미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김천 직지사 수미단.

수덕사 대웅전의 육각형 수미단

수미단에 새겨진 목제 장식.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다

남아있는 수미단 중에서도 불교 조각의 백미로 꼽히는 수미단은 단연 ‘영천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보물)’이다. 이 수미단은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화려하고 우수한 조각으로 1968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수미단이 설치되어 있는 백흥암 극락전도 1984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곧 법당 안의 수미단이 먼저 보물로 지정되고 법당 건물은 16년 뒤에야 다시 보물로 지정된 셈이다. 그만큼 백흥암 극락전 수미단은 불교 목공예의 정수라고 하겠다.

수미단은 보통 하대·중대·상대의 3단 구조로 되어 있다. 백흥암 수미단도 이러한 양식으로 조성하였는데 상대의 삼존불 앞쪽에 기다란 보조용 탁자를 설치해 결국 계단식 2단 형식을 갖추었다.

전체적인 조각의 채색은 주사의 붉은색과 진한 초록색을 많이 써서 진중하고 엄숙한 느낌을 준다. 1,700년대에 이르면 탱화에서도 초록색이 많아지고 광배도 녹색으로 바뀌기 때문에 수미단의 채색 역시 이 시기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수미단의 하대는 족대(足臺) 형태로 정면을 5칸으로 나누고 각 칸을 상다리 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상다리 아래에는 용과 벽사의 얼굴을 정면상으로 조각했다. 이 얼굴을 보통 도깨비 얼굴이라 하기도 하고 용의 정면상이라고 하는데 부처님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수미단의 몸체라 할 수 있는 중대는 보통 상·중·하 3단으로 구분되는데 백흥암 수미단의 각 단은 각각 5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우선 하단은 전부 모란꽃이 만발했다. 모란꽃은 중국 원산지로 예전부터 꽃의 왕이라 하여 화왕(花王)이라 불렸다. 불교에서는 법의 왕인 부처님과 꽃의 왕인 모란을 대비시켜 고려시대부터 수미단이나 벽화에 많이 등장했다. 모란은 또 부귀공명을 상징하기에 백성들의 소망을 담아 오랫동안 전승되었다. 모란꽃들 사이사이에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기린, 용마, 사자, 코끼리 등이 곳곳에 새겨졌다.

중대 중단에는 불교의 상징화인 연꽃이 흐드러졌는데 그 사이사이에 용, 물고기, 개구리 등이 새겨져 있다. 연꽃 속에서 노닐고 있는 동자는 연화화생(蓮花化生)과 관계가 있다. 중생이 죽어 극락에 태어날 때는 연못의 연꽃 속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극락전 수미단에 동자가 나타난 것은 이를 상징했을 것이다.

중단 양쪽 끝에는 국화꽃이 등장한다. 연꽃이나 국화꽃은 조선의 선비들이 선호하는 꽃이었다.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어도 거기에 물들지 않으니 선비의 몸가짐을 상징했고 국화는 모든 꽃이 진 뒤 홀로 피어나니 선비의 지조를 나타냈다. 불교에서 국화는 수행자의 표상으로서 불교 조각에 나타나게 된다. 중대 상단은 현실이나 상상의 세계에서 전부 하늘을 날 수 있는 새들이 등장한다. 학과 봉황이 날고 공작과 꿩이 꽃들 사이에서 노닌다.

은해사 백흥암 수미단.

수미단의 양쪽 측면에는 더욱 기이한 조각들이 나타난다. 가릉빈가가 복숭아를 쟁반에 받쳐 들고 날아가고 거북껍질을 등에 진 괴인이 여의주를 들고 걸어간다. 하체는 물고기고 상체는 사람인 인물이 여의주를 받쳐 들고 있기도 하고 머리만 사람인 물고기가 연꽃을 배경으로 새겨져 있기도 하다.

백흥암 수미단은 수미산 아래 살고 있는 다양한 중생들의 모습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구성하고 표현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중생들의 모습이 새겨졌다고 해서 불교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어느 세계에서나 통용되는 진리이기 때문에 다른 세계의 중생들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성불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보물로 지정된 또 하나의 수미단은 김천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이다. 세 분 부처님이 앉아있는 수미단은 ‘순치 8년 신묘 4월 대웅전 황악산 직지사’라는 먹글씨가 남아있어 1651년에 조성된 작품임을 알 수 있었다. 수미단은 직사각형 평면 탁자 형태로 길이가 10m가 넘어 가장 큰 규모다. 채색은 적색, 녹색, 청색을 주로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밝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
중대 역시 상·중·하 3단으로 되어 있는데 하단에는 쏘가리와 조개가 보인다. 쏘가리는 궐어(鱖魚)라고 하는데 궁궐의 궐(闕)자와 발음이 같다. 민화에서도 쏘가리 그림은 과거에 급제하여 대궐에 들어가 벼슬살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곧 출세의 소망과 화재 예방의 의미를 함께 나타낸 것이다. 조개 역시 자손 창성의 의미로 썼기 때문에 화재방지와 신자들의 자손 창성 발원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백흥암의 수미단은 수메루산 아래에 사는 다양한 생명체를 무한한 상상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중단에는 땅 위에 살고 있는 중생들이 연꽃과 모란 사이에 자유롭게 나타나고 있다. 특이하게 왼쪽 첫째 칸에는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이 조각돼 있다. 도리천 위로는 바로 허공 세계이니 중대의 상단에는 허공을 나는 용만 나타냈다.

중단에는 나비와 잠자리도 보인다. 나비와 잠자리는 애벌레 기간을 거친 후 번데기가 되고 다시 날개가 달린 성충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게 된다. 이는 도교에서 사람이 신선이 되는 모습으로 비유되는데 불교에서도 이를 수용해 수행을 통해 자유로운 해탈을 얻는 상징으로 써 왔다. 김천 직지사 대웅전 수미단은 조선 후기 수미단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하며 조각 솜씨도 수준급이다. 17세기 중반의 불교 목공예를 대표하는 작품인 동시에 다양한 소재와 문양, 밝은 채색, 깊이 있는 조각 솜씨를 자신 있게 드러낸다. 그래서 이 법당의 수미단을 은해사 백흥암, 범어사 대웅전, 파계사 원통전 등 꾸밈이 많은 장엄형 수미단의 계보에서 첫머리에 두고 있는 것이다.

수미단은 초월적이고 환상적인 중생들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내면에는 부처님을 향한 중생들의 예경과 환희심, 일상생활의 소망 등이 다양한 형태의 조각과 문양으로 구현된 세계다.
단순히 법당을 꾸미고 장식하는 조각품이 아니라 지혜를 닦고 복덕을 쌓으려는 중생들의 수행에 도움을 주는 장엄물이다. 수미단에는 불교가 지향하는 가르침과 목표가 은은히 배어 있다. 보면 볼수록 귀중한 문화재인 것이다.

 노승대  우리 문화를 향한 변함없는 열정으로, 20년 넘는 세월을 문화유산 답사와 공부에 쏟았다. 그 결과물은 <불광>, <사람과 산> 등 잡지에 기고해 왔으며, 저서로 『사찰 속 숨은 조연들』, 『사찰에는 도깨비도 살고 삼신할미도 산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