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엘 자주 드나들게 되는 환경에다 어느 절이든 부처님과 스님 계신 곳이라 생각하면
조심성보다는 무람없는 마음가짐인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지역이 다르다 하나 대체로 익숙한 사하촌 분위기와 가람배치에 좀처럼 들뜨는 법이 없다.
그런데 하동 청계사로 향하는 길은 무언가 다르다.
옥종면 혹은 청계사라는 낯선 지명과 사찰명 때문만은 아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타고 올라가서도 어림잡아 10킬로미터는 직진하여 지나는 산골 동네.
도심에서는 한 블록 건너 하나일 만큼 흔한 편의점도,
출출함을 달랠 식당도,
‘가든’이라 부르는 피서지형 휴게시설도 없다.
그저 초록 나무의 향연일 뿐.
마을 입구에서 절로 이어지는 산길도 그렇다. 출세간出世間으로 난 길임이 분명하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야말로 숲속 외딴 절인데, 산이라기보다는 섬에 들어온 듯하다. 거사님 한 분은 묵묵히 장작을 패고 있고, 공양간에서는 외지인을 경계하지 않는 편안한 얼굴들이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다. 때는 아직 봄. 이른 아침부터 찻잎을 따고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전해 들었다. 개울을 건너 짧은 산길을 오르자 정자에 둘러앉아 새참을 하는 사람들이 객을 맞이한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되어 보이는 찻잎들이 소쿠리 가득 쌓여 있다. 오동통하고 윤기가 흐른다. 저녁 무렵엔 덖이고 비비어 녹차로 변할 것들이다. 사람 키보다 큰 죽순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은 울창한 대숲을 거닐었다. 오감으로 충만하게 느끼고자 하였는데, 간직하고 저장하고자 하는 욕망에 졌다. 별수 없이 휴대전화 카메라를 겨누게 된다. 숲을 내려가는 길에는 필히 녹차밭을 지나치게 된다. 차밭 중간중간 전신주처럼 서 있는 활엽수들은 꼭 인도 다르질링Darjeeling의 그것과 같은 모양새다. 허리께 정도 오는 차나무 위로 밀짚모자들이 빼꼼빼꼼 솟아있다. 부지런한 일손들이 새참을 마치고 다시 차를 따고 있는 것이다. 30년 전, 이 자리엔 녹차나무도 동백나무도 대웅전도 없었다. 모두 청계사 주지 지산 스님이 손수 일군 것들이다.
“이렇게 첩첩산중에 있는 절은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스님.” 첫인사로 건넨 말에 스님은 부정도 동조도 않는다. 그저 빙긋 웃을 뿐. 어떻게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내가 50대 중반일 때 경북에서 성주포교당을 하고 있었습니다. 40대 중반이 되니까 포교당 신도 회장님이 ‘출세간을 막론하고 근본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사려 깊은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 나이 60만 되면 산중에 들어가려고 생각했는데, 마침 우리 은사스님께서 지어주신 내 이름이 ‘지혜 지智’에 ‘뫼 산山’을 쓰는 지산智山이 아닙니까. 나는 지리산에 살아야지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여러 인연의 추천을 통해서 이 터를 만났습니다. 다른 것은 보잘것없었지만, 계곡이 좋고 물이 좋아 마음에 들었습니다. 해서 이유 불문 여기에 살게 되었지요.” 지금의 가람은 지산 스님이 하나하나 일군 것이다.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청계사 불사를 하고, 나머지 요일에는 포교당 업무를 봤다. 인근 절에서 포크레인으로 절을 일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아! 저렇게 해야 일이 진행되겠구나.’ 느꼈다. 가까운 스님에게 헌 포크레인 하나를 시주받아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차나무가 없었던 산에 차나무를 심은 것도 불사 시작과 동시다. “30년 전 대웅전을 지을 때부터 동백나무와 차나무 군락을 조성했습니다. 차는 맑음이고 맑음은 청정을 의미합니다. 또한 차는 선의 경지로 들어가는 문인 연유고요.”
청계사는 지난해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됐다. 그 옛날 선禪을 생각하며 조성한 차밭이 오늘에는 선이 필요한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템플스테이 제목은 ‘청계수水에 차茶를 우리다’. 좌선이나 명상에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 차이기에 찻잎 따는 법, 차를 만드는 법, 차를 마시는 법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한겨울만 아니면 제다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어요. 봄에는 덖음차를 만들고 계절이 지나 찻잎이 쇠해지면 발효차를 만듭니다. 정신 수양을 위한 다도나 부처님께 예경 올리는 용도로는 덖음차를 씁니다. 이후에 만드는 발효차는 흔히 ‘띄운 차’라고 합니다.” 템플스테이 체험객들은 오전에 차를 따고 오후에 아홉 번 덖은 차를 만든다. 그날 제다 양이 많아서 완성하지 못할 경우는 먼저 온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차를 맛보고, 2박 3일쯤 템플스테이를 여유롭게 참여하면서 스스로 만든 차를 마셔보고 품평할 수 있다. 아홉 번 덖은 차. 구증구포라 한다. 다르게 말하면 법제차法製茶다. 일반적으로 차 만드는 일을 제다製茶라고 하는데, 절집에서 차를 만들 때는 ‘법’이라는 또 다른 개념이 등장한다.
“법제는 원래 갖추어진 법도에 의해서 정확하게 제조했다는 뜻입니다. 녹차는 위조, 살청, 유념, 가향의 과정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중 ‘살청’을 통해서는 자기 몸을 태워내며 견디는 것을 배우고, ‘유념’하면서는 자기 몸을 상처 내서 다른 것과 섞이는 것을 배웁니다. 이후에는 향이 잘 묻어서 일 년 이상 갈 수 있도록 기다리는 시간이에요. 멋과 맛의 품위가 함께 있지요.”
팔순 넘은 할아버지 스님이 열댓 살 앳된 행자이던 시절, 주지스님의 심부름으로 생애 한 번도 마셔본 적 없는 차를 끓여 올렸고 주지스님은 “오늘 차가 특히 맛있다”고 칭찬했다. 선암사의 유명한 스님을 초청하여 법제를 배우고, 지금까지 평생 차 만드는 일을 수행 삼아 하고 있지만 행자 시절 차 맛을 구현하기엔 아직도 1할이 부족하다. 법의 구족에 완벽이 없듯 법제 역시 마찬가지인가 보다.
지산 스님이 차를 통해 전하고 싶은 것은 궁극적으로 선의 경지다. 현대인에게 ‘선’이란 너무 멀리 있는 말이 아닌지 회의감을 품기 무섭게 스님이 부연한다.
“법제한 차는 떫은 맛, 풋풋한 맛, 쓴 맛, 신 맛, 단 맛의 오미를 가지게 된단다. 오미를 또렷하게 알면 오욕에 빠지지 않고 맑은 정신을 누릴 수가 있다고. 오욕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괴롭게 만드는 재물욕, 이성욕, 음식욕, 수면욕, 명예욕 등의 욕망이다.”
“현대에는 차를 극명하게 기호식품으로 취급합니다. 또 다른 기호식품에는 술이 있어요. 차를 마실 것인가 술을 마실 것인가를 놓고 볼 때, 술이 우리에게 주는 최후의 선물은 취하는 것이고 차가 주는 최후의 선물은 깨어있는 것입니다. 차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합니다. 깨어있는 삶이 옳은 삶인가, 취해서 혼몽한 것이 옳은 삶인가, 묻는다면 대답은 명확하겠지요? 어렵거나 고통스럽거나 혼미한 상황에서 깨어있는 삶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다도가 가리키는 길이에요. 몸의 기능을 정화하고 정신을 본정신으로 돌려내고 취생몽사에서 깨어나게 해주는 것. 그게 차가 하는 일이고, 청계사 템플스테이의 취지입니다.”
청계사라는 이름의 출세간에 다녀가는 이들, 선을 단박에 알지는 못해도 차와 차를 마시는 정취만은 제대로 알고 갈 수 있다.
“『논어』에 사귀어서 도움이 되는 세 가지 벗을 익자삼우益者三友라고 했습니다.
차에도 익자삼우가 있어요.
첫째는 계곡이요 둘째는 꽃이요 셋째는 차입니다.
차의 오미를 음미하는 경지에서는 물은 물대로 흐르고 꽃은 꽃대로 피어납니다.
항상 계곡이 소리를 내며 흐르는 청계사에서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의 경지를 느끼고 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