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늘 절을 향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절에 다녔고,
젊은 날엔 출가를 고민했던 적도 있다.
아이 셋을 키우며 바쁜 시간 속에서도
절에 나가 봉사하는 일은
언제나 기쁜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이
나를 천천히 템플스테이로 이끌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지금, 강렬하게 내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마음으로 떠났던
템플스테이의 하룻밤이었다.
서울아산병원 불교 법당에서 오랜 시간 봉사해 왔다.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며 환자와 보호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절하는 법을 알려주고 환자와 함께 기도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병원이라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나는 불자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 애썼다. 그곳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였다.
그런데 코로나(COVID-19)가 닥치고 법당 문이 닫히자, 나의 일상도 덩그러니 멈춰버렸다. 무언가가 ‘텅’ 하고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그 무렵, 우연히 생각난 것이 템플스테이였다. 그전에도 절에는 자주 다녔지만, 정식으로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적은 없었다. 늘 불광사에서 활동했고, 주말마다 가까운 도선사나 승가사 같은 사찰을 찾았다. 멀리로는 봉정암이나 오세암으로 다녀온 산행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는 진짜로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첫 사찰은 강화도 전등사였다. 공양간 창밖으로 보이던 일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울리는 목탁 소리, 따뜻한 공양 한 그릇. 108배, 새벽예불, 낯선 사람들과의 침묵까지도. 매 순간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절에서 머물던 첫날 밤, 나는 처음으로 ‘쉼’이라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알게 되었다.
찬 공기가 볼을 스치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가 마음을 울릴 때 문득 엄마의 품이 떠올랐다. 어릴 적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던 품처럼 따뜻하고도 조용한 시간이었다. 말없이 안아주고 조용히 머물게 해주는 공간. 템플스테이는 ‘내가 다시 엄마 품에 안긴 것 같은’ 경험이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매주 주말마다 템플스테이를 찾았다. 화엄사에서는 연기암에 오르며 묵언 명상을 했고, 선본사에서는 갓바위를 오르며 108배를 올렸다. 동화사 오솔길은 명상하기 딱 좋은 길이다. 전등사 공양간에서 바라다보는 일출이 참 좋았다. 어느 곳이든 절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스님과 나눈 차담, 자연과 어우러지는 명상, 새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고요한 시간들. 모든 순간을 지내면서 맑고 밝은 에너지가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템플스테이에 다니며 내 삶은 조금씩 달라졌다.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 삶의 지층이 더 단단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절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절마다 다르다. 어떤 절에서는 눈물을 흘렸고, 어떤 절에서는 웃었다. 어떤 절에서는 멧돼지와 마주쳐 산길을 뛰어 내려오던 날도 있었고, 어떤 절에서는 노을 속에서 법고 소리에 가만히 숨을 고르기도 했다. 그 모든 순간이 내 인생의 한 장면이 되었다.
그 변화는 병원으로 이어졌다. 다시 문을 연 법당에서 환자를 맞이했을 때 템플스테이를 다녀오며 채워진 에너지를 나누는 마음으로 일했다. 스님들과 나눈 대화에서 얻은 지혜도 함께 전했다. 병원 법당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싶어 더욱 노력했다. 어느 날 한 환자가 퇴원하며 내 손을 꼭 잡고 전해준 이야기가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선생님, 주치의 선생님보다 더 의지되고 큰 치유를 받는 기분이었어요.” 절에서 받은 위로가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도 스며들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받은 위로와 고요는 더 많은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자산이 되었다. 이제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더 부드럽고 더 따뜻한 말로 이야기를 전하고, 자연의 숨결 속에서 얻은 평안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새 삶의 시작점이 된다는 걸 느꼈다.
지금 나는 69세다. 아이들을 모두 키워냈고 손주들도 자란다. 이제는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다. 누가 물었다. “인생에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더 바라는 건 없어요.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건, ‘삶 자체가 수행’이라는 생각을 더욱 굳건하게 해준 템플스테이 덕분이 크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마음 쉴 곳을 찾는다면 템플스테이를 한번 해보라고. 하룻밤만이라도 절에서 자고 일어나면 분명 무언가가 달라진다. 아주 작은 변화이지만 그게 인생을 조금씩 바꿔줄지도 모른다. 나처럼, 그 하룻밤이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음엔 어디로 갈까.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가득 풍경이 번진다. 새로운 사찰에서 다시 한번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품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살아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템플스테이는 내게 끝나지 않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