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홈페이지 한국사찰음식 홈페이지
지난호 보기
sns 공유하기

웹진 구독신청최신 웹진을 이메일로 편하게
받아볼 수 있습니다.

불의 말, 불의 침묵

글. 임택수

그림. 김상규

서서 운명한 선승처럼 범종은 잿더미 위에 홀로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두 쪽으로 갈라질 듯이 종의 천판天板에서 하단까지 깨어져 있었다.

천년 숲길 노송들의 설법은 중단되고 가랑비만 속닥이듯 내리는 오후.

당신은 내게 전화를 했다.
경내에 탄내가 진동한다고 했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히듯 자꾸 끊겼다.
숯처럼 밑동이 타버린 나무와 부서진 기왓장, 무너진 담장, 전각의 잔해들.
사찰의 보물이던 연수전과 가운루를 포함해 연지암, 아거각, 우화루, 열반당 등 소실된 전각이
열 손가락을 더 넘는다고 했다.
행자 숙소가 있던 만덕당도 무너졌다고 했다.

당신은 그 절에서 행자로 살았었다. 행자行者. 행자는 걷는 사람인가. 그 시절의 당신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티 나지 않는 자리에서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쳐냈을 것이다. 짧게나마 절집에서 이웃으로 살 때, 당신이 어깨를 다쳤는데도 종일 비계 위에서 연등 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엄연히 말해, 그건 당신 일이 아니었다. 행자 시절, 당신이 주로 맡았던 소임은 종두鐘頭, 즉 종지기였다. 새벽엔 산사 주변에서 더불어 사는 두두물물頭頭物物을 조용히 깨우듯 크레셴도crescendo로, 저녁엔 석양이 꺼지듯 데크레셴도decrescendo로 힘을 조절해 타종했다.

갑작스러운 고열을 견디지 못한 것일까. 당신은 종각이 있던 자리를 돌아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보통 우리나라에선 종을 바닥에서 낮게 띄워 매달아 놓고, 종구 아래쪽 지면을 움푹 파거나 큰 독을 묻는다. 종을 쳤을 때 종구에서 빠져나온 소리가 그 안에서 메아리 현상을 이루고 다시 종신 안으로 반사되어 소리의 여운이 길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고안한 시설을 ‘울 명鳴’자에 ‘항아리 동垌’을 써서 명동鳴垌 또는 움통이라고 한다. 천도千度를 웃도는 불길에도 녹지 않은 것을 보면 신식 범종은 구리의 녹는점에 작용하는 주석량을 전통 방식에 비해 덜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움통에 불을 지펴 범종을 예열했다면. 그랬더라면. 하지만 대피 명령이 떨어지고 채 십 분도 되지 않아 강풍이 불고, 불길이 폭격처럼 온 사방에서 날아들었다고 한다. 손쓸 틈이 없는 상황이었다.

사소한 부주의가 오랜 수행의 에너지가 담긴 공간을 버글버글 삼켜버렸다. 종은 말이 없고, 천왕문 곁 철쭉은 흐드러지게 피었다. 종은 불길 속에서도 울림을 지키려 죽을힘을 다했을 것이다. 어쩌면 불길에 휩싸여 바닥으로 떨어질 때 그 충격 때문에 깨어진 건지도 모른다. 불에 탄 범종은 어떤 소리를 낼까? 그건 더 이상 울림이 아니라 비명에 가까울 것이다. 누군가의 한 생애가 허망하게 사라지듯 되돌릴 수 없는 시간으로 단절된 것이다.

범종은 태어날 때부터 불을 품었다. 불이 없었다면 아름다움도 태어날 수 없었다. 첫 울림을 내던 날, 그 소리는 세상의 고요를 깨뜨리며 더 깊은 고요를 안겨주었다. 피안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는 진언과도 같았다. 그러나 불은 아무렇지 않게 그 아름다움을 재로 만들었다. 불은 범종의 자궁이었고 무덤이었다. 불에 탄 범종은, 역설적으로 무상함을 또렷이 상기시켜 주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모든 것은 변하고 소멸한다는 진리를 스스로 몸소 겪으며 증명해 주었다. 불타는 순간조차 법음法音이었을 것이다.

불이 있다는 것은 변화가 있다는 뜻이고, 변화가 있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만물은 불에서 나와 불로 돌아간다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가 말했다. 불은 변화를 상징하는 원초적 로고스Logos이다. 고정되지 않고 흐르며, 생성과 소멸의 뿌리를 함께 지닌다. 불은 그렇게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품은 역설의 형상이다. 생명의 시작이며, 상실의 예언자이고, 깊은 사랑과 잔인한 증오가 동시에 머무는 곳이다. 또한 불은 창조이며 동시에 파괴이다. 순수이자 위험이며, 요람이자 무덤이다. 불은 사라지는 것을 통해 존재하고, 파괴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가능케 한다. 불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경험되어야 하고, 감각되어야 하며, 존재의 가장 밑바닥에서 솟구쳐 올라야만 제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은, 당신과 나, 우리가 되는 방식이다.

우리의 내면에도 불이 있다. 불안의 불, 탐욕의 불, 질투의 불.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고픈 지독한 열망이 있다. 불은 가만히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불은 안다.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언젠가는 사라질 것임을. 그래서 불은 더욱 한순간도 헛되이 타지 않는다. 그러고는 기꺼이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은 불을 닮았다. 어딘가를 비추며 동시에 어딘가를 태우는 존재이다. 그래서 불은 감정과도 같고, 삶 그 자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드러우면서도 거세고, 포근하면서도 위험하며, 사랑처럼 따뜻하지만, 미움처럼 잔혹한 그래서 인간의 모든 것이 담긴 불이다. 그 불이 ‘나’라는 집을 삼킨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불타는 집. 온 세상이 화택火宅이 된다.

우리는 한 번쯤 불이었다. 사랑 때문에, 상실 때문에, 고요한 절망 속에서 무언가를 태우며, 무언가로 다시 피어오르며 우리의 존재를 세상에 새겼다. 어떤 이는 분노라는 이름의 불로, 어떤 이는 사랑이라는 빛으로. 어떤 이는 이름조차 모를 뜨거움 하나를 평생 품고 간다. 또한 누군가는 아이를 위한 불을 지키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사람을 위해 불을 켜둔다. 누군가는 예술이나 신념이라는 이름의 불을 다스리며, 자신의 하루하루를 태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떤 불은 무언가를 끝내지만 그 끝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폭풍의 눈 속, 고요한 중심에서 불을 모아 다스리는 중이다. 마치 말의 불꽃을 스스로 통제하는 언어의 연금술사처럼. 그 불은 고요한 글의 온기로 번역되고 어떤 이의 삶을 덥히는 작은 등불을 꿈꾼다. 나는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오늘도 존재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잃은 것을 애도하는 방식이기도 하며, 또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갈 준비를 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의 불은 타인을 태우지 않고, 자신을 재로 만들지 않으려는 아슬아슬한 균형의 미학이다. 그 불은 작고, 말이 없고, 시간의 먼지처럼 느리게 타오르며 내 심장을 뭉근히 덥힌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내 안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일. 밖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빗물 같은 현실이 쏟아지더라도 그 불을 두 손으로 감싸고 지켜서 고요히 타오르게 하는 일.

때때로 불길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는 사실이 있다. 무엇이 진짜 나를 태웠고, 무엇이 나를 비추고 있었는지. 어떤 상처가 잔해를 남겼고, 어떤 기억이 여전히 희미하게 따스한지. 당신과 나는 불에 의해 연마되는 연장과 같다. 단련된 금속의 떨림과 한 생을 깎아 만든 말의 칼날을 떠올린다. 불은 우리 안에서 그저 타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고, 빚고, 다듬고, 이끌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불을 견디는 자이자, 불을 통해 빚어지는 자이며, 동시에 불을 다스리는 자이기도 하다. 세상은 여전히 어둡고 춥다.

우리는 불을 견딘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잿더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손길처럼 조심스럽고도 충만한 무엇이 당신에게서 뻗어 나온다. 당신이 지켜낸 약속들과 울지 않고 타오른 푸른 저녁이 환하다. 잿더미 사이로 초록이 다시 무성해진다. 빛 쪽으로, 한 방향만 보는 존재들은 얼마나 절실하고 애틋한가. 당신은 죽음이 삶과 다르지 않다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경지를 불탄 범종 앞에서 묵상한다. 둘 아닌 도리에 대해. 바다가 있어 파도가 있고, 파도는 바다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해. 변화하고 생멸하는 무상無常에 대해. 당신은 불이 차지했던 공간을 본다. 광폭했던 그 불은 지금 어디 있는가. 아무런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당신의 그림자가 비 갠 폐허를 건너고 있다.

지난 3월 경북 의성 산불로 신라 천년고찰 고운사가 화마를 입었습니다. 조속한 복원으로 천년고찰의 찬란한 모습을 찾을 수 있기를 함께 발원합니다.

임택수 전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템플스테이 팀장. 2024년 단편소설 「오랜 날 오랜 밤」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데 이어 장편소설 『김섬과 박혜람』으로 제20회 세계문학상을 동시 수상하며 등단했다. 여러 가지에 애착하지만, 영원히 내 것은 아니라고 고두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김상규 조계종 포교원 불교 크리에이터 4기. 저서로 『까만 별』 『빛과 바람의 그림, 고려불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