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다선, 차를 통해 깨달음으로
성주 자비선사 ‘차명상코칭 템플스테이’
차 없이 차를 마신다. 말장난일까.
차 없이 차를 마셔도 차를 마신 것 같은 느낌이 온다. 가능할까.
주어가 ‘차’라서 상상하기가 애매하다면 그 자리에 ‘레몬’을 넣어보자.
레몬 없이 레몬을 먹었다고 생각하면 입가에 침이 고인다. 사실인가? ‘접촉하다’라는 사건은
비단 감각의 영역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뇌는 상상과 실제 경험을 거의 구분하지 못하고,
마음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느낌과 그 이후의 과정까지 유도한다.
우리 하는 일이 단순히 감각을 즐기는 데에만 있지 않다면
차 없이도 차를 마실 수 있고, 차 없이도 차를 통해 명상할 수 있다.
어디에서? 성주 자비선사에서.
고령 나들목에서 대가야읍을 지나 논밭이 펼쳐진 시골 마을을 통과하면 너른 산과 들에 폭 묻혀 있는 절이 나타난다. 큼직한 나무 기둥 두 개 사이에 가로대를 얹어 만든 인도의 토라나 형태의 일주문 위에는 기와가 일렬로 얹혔다. 여기에서부터 부처님 도량이라는 표시다. 자비선사는 ㈔한국차명상협회 근본도량이라 함직하다. 협회 이사장이자 ‘자비선 명상’이라는 독자적인 명상법으로 불자들을 이끄는 지운 스님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이다.
자비선 명상의 여러 갈래 중 ‘자비다선(慈悲茶禪)’은 차를 매개로 하는 명상법이다. 이름에서 차와의 연관성을 유추하게 하는데, 정작 스님은 차를 두고 가타부타 말하지 않는다. 외려 무심하다. “자비선사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요?”라는 물음에 지운 스님이 대답한다. “자비선을 하는 도량이지요.” 그러고는 호로록, 차를 우리고 마시는 외에 말의 군더더기가 없다. 객들에게 내어준 차는 김해 장군차가 원료이되 비비기(유념) 없이 널찍한 잎의 형태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것이 독특하다. 쓴맛 없이 깊고 개운하고 달큰하다. 스님이 직접 만든 것이다.
차는 즐기는 마음 아닌 수행자를 위한 것
대웅전 뒤편, 자연석을 쌓아 만든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5~6월에 템플스테이를 하러 오면 이 차밭에서 찻잎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다. 마시는 차의 원물을 직접 만져보고 느껴보니 호응이 좋다는 실무자의 설명에도 스님은 잠시 묵묵. 그러다 이어지는 말이 의외다. “차 좋아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 “차를 좋아해서 차를 가꾸고 마시는 것이 아니에요. 차는 수행과 관계되어 있어요. 차를 마시고 수행하면 ‘경안각지(輕安覺支)’가 생겨납니다. 마음이 기쁘고 안정되고 몸이 가벼워지는지를 보면 수행을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부처님께서 열반에 이르는 길을 설명할 때 강조하신 일곱 가지 수행의 요소, 즉 ‘칠각지(七覺支)’를 말하는 것이다.
차 농사를 짓는 일은 보통 노고로 되는 일이 아닐 것인데, 차밭을 가꾸는 이유는 수행자를 위해서라고 한다. 수행에 차가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는 열매이기 때문에 수렴하는 특성을 가지고, 차는 잎이기에 발산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차는 기를 열어줘요. 생각은 기운을 타고 움직이거든요. 몸의 기혈을 열어주면 몸이 가볍고 망상이 적어집니다. 몸이 가볍고 망상이 적다는 것은 자유로워진다는 거예요. 나는 자유롭고 싶지, 매이고 싶지 않아요. 멋지지 않습니까? 차를 가꾸는 것은 풍류를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행에 아주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를 위한 것이에요.”
자비심을 드러나게 하는 매개, 차
자비선사의 대표 프로그램인 ‘자비다선 차명상’은 1998년 시작되었다. 송광사 학인 스님들을 대상으로 명상 지도를 하는데, 학인 스님들이 바로 수행에 들어가기 어려워하기에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차를 매개로 명상을 설명했다. 얼른 세어보면 두세 해 모자란 30년. 그 시간 동안 수행과 포교의 현장에서 집대성해 온 자비다선을 스님은 ‘명상의 종합선물세트’라 표현한다.
“차명상은 다도도 아니고 다례도 아닙니다. 명상에는 도구가 따로 필요하지 않지만,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차를 도구로 삼아 이해를 돕습니다. 차의 빛깔과 향기와 맛을 통해 의식을 확장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생멸 없음을 지향할 수 있어요.”
템플스테이에 가면 차를 마실 수 있다. 자비선사에서도 차를 마실 수 있다. 그러나 자비선사에서의 차는 음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명상으로 향하는 길목’이라는 데에 방점이 찍힌다. 다양한 차를 맛보듯 다양한 차명상을 알아가는 시음의 장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스님의 저서 『명상, 차(茶)를 논하다 3 - 행다선(行茶禪)』(2020, 연꽃호수)에 소개된 차명상의 종류만 60여 가지.
궁극적으로는 얽히고 뭉친 심리를 해체하여 본연의 자비심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아가 부처님이 깨친 공(空)의 도리를 체감하게 하는 것.
걷기 명상에서 차명상 코칭 과정까지
자비선사는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 중 재방문이 많은 곳 중 하나이다. ‘명상 전문 사찰’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인터넷을 보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명상을 통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다.
차뿐일까. 걷기 명상, 소리선 명상 등 온갖 수단을 빌리는 것 같지만, 명상이란 마음의 근원을 꿰뚫는 데 있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자비선사에는 자비경선(걷기 명상), 소리선, 자비수관(慈悲手觀)은 물론 자비다선 마스터를 양성하는 차명상 코칭 과정도 마련되어 있다.
템플스테이를 할 때 프로그램 선택의 폭이 넓다는 말이다. “걷기 명상인 자비경선은 우울감이나 분노가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 자비경선은 의식의 확장을 경험하게 합니다. 의식이 확장된다는 것은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예요. 층간소음 등 대인관계에서 소리에 민감한 사람들은 소리선 명상을 추천합니다. 소리는 생멸하지만 듣는 성품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면 소리로 인한 민감함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오로지 변한다는 맛으로 돌아가다”
나름대로 불자이고 나름대로 차 생활을 하고 있어서 화두처럼 품고 있었지만,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은 알 듯 말 듯한 수수께끼 같았다. 힌트를 얻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일어났다. “스님, 다선일미가 뭐예요?” 빙긋 웃는다.
“‘차와 선이 한 맛이다’라고들 이야기하지요? 차와 선에 무슨 맛이 있어서 그 맛이 같다고 하는 것은 엉터리예요. 다선일미란 차를 마심으로써 일체 모든 것이 한 맛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맛은 오로지 변한다는 맛뿐입니다. 혀와 물과 미각 의식이 상호의존해야 차 맛을 알 수 있다는 말이에요. 상호의존은 실체 없음이에요. 실체가 없다는 것은 곧 공(空)입니다. 다선일미란, 차 마시는 일이란 수행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느 사람이든 차명상을 통해 깨달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상상 속 차실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세요. 상상 속에서 다관의 뚜껑을 열고 찻잎을 넣고 물을 붓습니다. 찻물을 차 식힘 그릇에 따르고, 이어서 잔에 따릅니다. 실제 마실 때와 똑같이 차의 빛깔과 향기, 맛을 음미합니다. 찻물이 목을 통과하여 내려갈 때의 부피감을 상상합니다. 찻물이 시냇물 흘러가듯 내려가는 것을 상상해 봅니다. 찻물이 안개와 같이 몸에 스며드는 것을 상상합니다.”
흘러가는 것이 돌아오지 않는 것임을 알면 무상의 지혜를 느낄 수 있고, 변하기 때문에 소유할 수 없음을 알면 불만족에 대한 지혜가 생기기에 원하는 것이 없어진다. 내 의지대로 생멸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무아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삼법인에서 한 치 벗어남이 없다.
배웅을 받으며 떠나오는 길, 긴 대화를 상기한다.
한마디로 돌아간다. “자비선사는 어떤 절입니까?”
“자비선을 하는 도량이지요.” 입에 단침이 고인다. 맛있는 차를 마셨을 때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