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건물의 적, 화재를 막아라
수신(水神)의 등장
중국에서 새롭게 일어난 명나라가 원나라를 몽골 초원으로 밀어내고, 1388년에는 명나라의 15만 대군이 몽골까지 쳐들어가면서 원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로부터 4년 뒤, 한반도에서는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며 실권을 잡았다. 명나라와의 다툼도 없었기에 조선은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외적의 침입도 없었다.
그러나 개국 200년 만인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7년간 이어진 이 전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죄 없는 백성들이 왜군에게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것을 좌시할 수 없었던 스님들은 칼을 들고 일어섰고, 맹렬하게 싸웠다. 용맹함을 떨치며 큰 활약을 펼치자 왜군도 승군을 본격적인 적으로 여기며 수많은 사찰을 방화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정유재란(1597) 때 전라도에 진출한 왜군은 이 지역의 모든 사찰을 불태웠고, 겨우 살아남은 건물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과 장흥 보림사 사천왕문 두 곳뿐이었다. 철저하게 보복을 당한 것이다. 전란 후 불교계는 조정의 지원을 받아 많은 사찰을 중건할 수 있었다. 이는 전쟁 중 승군의 활약과 사명당 스님이 조정을 대표해 왜국을 다녀오는 등 불교계의 공로 덕분이었다.
사찰을 중건하면서 스님들의 간절한 바람은 한 가지였다. “다시는 어떤 전쟁이나 재앙에 의해 법당이 불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 소망을 담아 사찰 건물에는 여러 가지 상징물들이 등장했다.
임진왜란 이후 지은 법당 건물 외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용 조각이다. 고려시대나 임진왜란 이전 법당에는 외부에 용 조각이 없다. 용은 물을 다스리는 수신(水神)이니, 화재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준 것이다. 물속에 사는 수룡(水龍)임을 표현하기 위해 물고기를 입에 문 용의 모습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네 귀퉁이 추녀 아래에 용을 두고, 그것도 모자라 현판 양옆에 청룡·황룡을 배치한다. 청룡은 사신(四神) 중 동쪽을 지키는 용이고, 오방룡(五方龍) 가운데 중앙의 황룡은 용들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함께 등장한다. 풍수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의 구도처럼 동쪽에는 청룡을, 서쪽에는 백호를 배치한 법당도 있다. 부안 개암사 대웅보전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대웅보전 현판 좌우에는 청룡·황룡의 정면상을 작은 판목에 조각해 부착해 놓았다.
수신으로 모시는 동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거북이다. 거북은 장수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물에 사는 존재로 수신이나 용왕의 사자로도 여겨졌다. 『열자(列子)』에는 “동해의 삼신산인 영주산·방장산·봉래산을 물속에서 거대한 거북이 등에 지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전승에 따라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 정면 축대 아래에는 거북 한 쌍이 법당을 지고 있도록 설치돼 있다. 두 마리는 각자 목과 손을 내밀고 있다. 대웅보전 내부 대들보에도 나무로 만든 작은 거북이 또 붙어 있다.
법당 내부에서 수미단을 지고 있도록 거북을 배치한 곳도 있다. 청도 운문사 관음전 수미단과 제천 신륵사 극락전 수미단이다. 특히 운문사 관음전에는 거북 두 마리와 용 한 마리가 함께 수미단을 지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거북 조각은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 건물에도 보이는데, 전주 경기전 정전 판벽에는 거북 두 마리가 붙어 있고 남원 광한루 현판 옆에도 큰 거북이가 붙어 있다.
또 『수궁가』의 대목처럼 토끼를 업은 거북 조각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남원 선원사 칠성각과 화엄사 구층암 천불보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각이 아닌 그림으로도 여러 사찰의 벽화에 등장한다. 결국 용이든 거북이든, 모두 수신으로서 법당을 지키고 보호해 달라는 기원의 상징물들이다.
물속 중생도 다 들어오시오
수신만으로는 화재 예방이 미흡하다고 생각했을까? 이번에는 물속 중생들까지 법당으로 들어오게 된다. 물속 중생이 사는 곳은 법당의 천장이다. 천장이 물바다이니 불이 일어나지 못한다고 믿은 것이다. 완주 송광사 대웅전은 인조 14년(1636)에 벽암 대사가 중건한 법당이다. 천장에는 물고기와 게, 거북이들이 나무로 조각되어 붙어 있다. 천장에 살면서 법당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게 잘 지키고, 부처님 법문도 열심히 들으며 더 나은 몸을 받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자세히 보면 토끼도 있다. ‘천장에 웬 토끼?’라는 의문은 잠시 후 풀리게 된다.
이후에는 연꽃 줄기 사이로 물속 중생들이 노니는 장면을 새겨 천장에 부착하는 양식으로 바뀐다. 연꽃 줄기가 물속에 잠겨 있으므로 자연히 물속 풍경임을 암시하게 된 것이다.
나주 불회사 대웅전(보물)은 화재로 없어진 법당을 정조 23년(1799)에 중건한 건물이다. 당연히 화재 예방을 위한 여러 상징물이 등장한다. 현판 옆의 청룡·황룡은 법당 안쪽으로 고기 꼬리 같은 용의 몸통이 이어지도록 표현되었으며, 천장에는 연꽃 사이로 온갖 물속 중생들이 깃들어 산다. 물고기·거북·게는 기본이고 징거미도 있다. 연꽃 줄기 사이로 수달의 얼굴도 보인다.
구례 천은사 극락전(보물)에는 수달이 입체 조각으로 표현돼 있다. 숙종 5년(1679) 중건 당시, 수미단 뒤 왼쪽 기둥 위에는 불을 제압한다는 해태 조각을, 오른쪽 기둥 위에는 수달 조각을 설치해 두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이 동물이 수달인지 잘 몰랐으나, 수달 입에 물고기를 문 모습에서 “천은사 계곡에 흔하게 살고 있었을 수달에게 불 끄는 임무를 주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돋보이는 발상이다.
영광 불갑사 대웅전(보물)에는 한발 더 나아가 용에게 쫓기는 수달을 유머러스하게 조각해 수미단에 배치했다. 물속 중생들을 법당 안으로 끌어들이는 발상은 수미단에도 많이 나타나는데, 연잎 위에 앉은 개구리·새우·조개 등 다양한 물속 생명들이 수미단 장식에 등장한다.
‘천장에 왜 토끼가 있지?’라는 의문은 고흥 금탑사 극락전에 들어서면서 저절로 풀린다. 이곳 법당 천장에는 방아 찧는 토끼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물이 있으면 달이 비치는 것은 당연지사. 잔잔한 수면 위에 달의 상징인 방아 찧는 토끼를 새겨 놓은 것이다.
이로써 순천 선암사 원통전, 안동 봉정사 영산암 응진전 외부에 새겨진 방아 찧는 토끼 조각이나 그림이 모두 화재 예방을 상징함을 알 수 있다.
특이하게 물고기가 법당 외부 공포에 조각된 건물도 있다. 문경 대승사 대웅전 외부 공포 윗부분에는 고등어처럼 생긴 물고기가 한 쌍 조각돼 있다. 한 마리는 꼬리 부분만 보인다. 이런 양식은 같은 문경 지역의 김룡사 대웅전에서도 확인된다.
바닷물로 불을 끄다
1817년, 법보사찰 합천 해인사에 큰불이 났다. 1695년부터 벌써 여섯 번째 화재였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탔는데, 무려 천여 칸이 사라졌다. 중건할 길이 막막했다. 마침 김노경(1766~1840)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었다. 추사 김정희의 부친으로, 불교에 우호적인 관리였다. 예산에는 가문에서 중건한 원찰인 화암사도 있었다. 김노경은 해인사 중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신이 1만 냥을 시주하고, 경상도 관내 70여 현의 관리들로부터 또 1만 냥을 모금했다. 이때 합천군수는 천 냥을 보시했다. 이듬해인 1818년에는 아들 김정희에게 『가야산해인사 중건상량문』을 쓰게 했다. 이런 공로로 해인사 비림에는 김노경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왜 해인사에는 화재가 자주 일어날까? 사찰에서는 남쪽 매화산 남산 제1봉(1,010m)이 불기운을 품은 화산(火山)이라, 그 불기운이 해인사로 자주 날아든다고 믿고 있었다. 그 봉우리의 화기를 눌러야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매년 양기가 가장 활발한 음력 단옷날(5월 5일)마다 바닷물을 상징하는 소금단지를 남산 제1봉 정상에 묻고, 사찰 경내 곳곳에도 묻었다. 흰 소금은 예로부터 부정한 기운이나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했다. 재수 없는 일을 당하거나 기분 나쁜 사람이 왔다 가면 소금을 뿌렸다. 실제로 1817년 이후 해인사에는 큰 화재가 없었다. 이후 소금단지 묻기는 사찰과 산림을 지키는 화재 액막이 행사로 자리 잡았다.
소금단지를 건물 곳곳에 올려두는 사찰도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 통도사다. 매년 단옷날이면 용왕재를 지내면서 각 전각 밑에 안치한 소금단지를 내리고 새 소금단지를 올린다. 전각의 모서리마다 처마 밑에 소금단지를 두어 바닷물이 화재를 미리 막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통도사의 대웅전, 명부전 등 전각에서는 쉽게 소금단지를 찾아볼 수 있다. 아예 ‘바다 해(海)’ 자나 ‘물 수(水)’자를 새겨 놓은 전각도 있다. 순천 선암사 심검당 판벽에는 이 두 글자를 투각으로 새겨 놓았다. 바닷물이 쏟아진다는 의미이니 모두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발상이다. 이 외에도 용마루 위에 사자나 벽사(辟邪) 도깨비 상을 얹고, 새 모양을 기와나 돌로 만들어 얹기도 한다. 새가 물 위에 떠 있는 형상을 상징으로 지붕 전체를 물바다에 비유한 것이다.
목재 건물의 가장 큰 적은 화재였다. 가장 무서운 것이 화재였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다양한 상징물을 법당 내·외부에 두어 화재를 막고자 했다. 오늘날에는 화재 진압 장치가 많이 발전했지만, 사찰을 불길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