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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 않는 숲, 자연이 전하는 법문

의성 등운산 고운사

글. 홍석환

사진. 하지권

산불이 꺼지자마자 급한 마음에 의성으로 달려갔지만, 차마 고운사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전각이 사라지고 지붕 위를 지켜야 할 기와가 바닥에 나뒹구는 화재 현장에, 청명한 소리를 잃은 채 갈라진 동종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그 모습을 당장 감내할 준비가 안 되었다. 대신 고운사를 둘러싸고 있는 등운산 숲속으로 향했다. 흑백사진 같았다. 화마가 지나간 숲은 검게 변했고 모든 생명이 사라진 채 완전히 멈춘 듯했다. 왜 이런 거대한 화재가 일어나 하필 이곳 의성에서, 안동으로, 그리고 동해안까지 멈추지 않았을까. 왜 서울시 면적의 두 배나 되는 숲이 불탈 수밖에 없었고, 그 숲에서 천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우리 사찰들을 태웠을까.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였을까. 머리에서 복잡하게 일어나는 질문들을 가까스로 누르며 다시 고운사를 찾는다.

검은 땅에서 생동하는 시간

지난봄, 천년의 시간 동안 겪었을 수많은 재난과 재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화마가 고운사를 덮쳤다. 단 한 번의 불길로 모든 생명이 사라졌고, 검은 침묵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 고운사의 숲에도 어김없이 새로운 생명을 틔우는 따뜻한 봄 햇살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왕성한 성장을 끌어내는 뜨거운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다시 이전보다 훨씬 더 추운 겨울 풍경을 준비하듯 이른 가을이 찾아왔다.

고운사는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고찰로, 신라 신문왕 원년(681년) 의상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등운산 아래 ‘연꽃이 반쯤 핀 형국’이라는 천하명당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부처님의 말씀 그대로 살고자 하는 해동 제일 지장도량이다.

고운사로 들어서는 길은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음에도 지금도 자연의 흙길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운사의 ‘자연 복원’ 선언은 지극히 고운사다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 의해 꾸며진 숲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 만들어 가는 숲을 선언한 것이다.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이 아니라 흙길을 유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등운산을 중심으로 동에서 서로 펼쳐지며 사찰을 감싸고 있는 약 250ha의 숲은 산불 이후 자연의 복원력을 살펴볼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숲이 될 것이다.

잿더미 속에서도 제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자연의 힘을 굳게 믿으며 다시 찾은 고운사는 역시나 봄의 기억을 빠르게 지우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사찰 주변의 숲은 지난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멀리 있는 산은 여전히 푸른 빛을 잃은 채 검게 그을린 소나무 숲 그대로인 듯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바닥에서 다시 자라는 푸른 나무와 풀들이 오히려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숲속에서는 언제 산불이 있었냐는 듯 풍성한 잎들이 나무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흑백에서 컬러로 첨단의 기술에 의해 본래의 색을 되찾은 한 장의 사진 같다고나 할까.

계곡 주변의 숲은 활기를 되찾았고, 뜨거운 열기로 줄기가 터진 활엽수들도 스스로 치유하며 꿋꿋하게 서 있었다. 불에 탄 전각들도 마찬가지였다. 큰 슬픔이 지나간 후였지만, 다시 생동하는 시간이 경내를 감싸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의 밝고 평온한 표정에서 산문을 들어설 때의 걱정은 자연스럽게 희미해졌다.

내년엔 백송을 심을 예정입니다

산불 직후 검게 변한 산을 한 차례 오른 후에는 아직 산에 오르지 않으셨다는 말씀과 달리, 산행을 준비하는 스님의 복장은 매일 산에 오르는 산감스님의 복장과 다르지 않았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매일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 땔감을 구하던 과거의 모습 그대로였다. 산행길을 미리 확인하고자 질문을 드렸더니 스님은 시선을 산으로 돌리며 눈앞에 보이는 가파른 사면 아무 곳을 가리켰다. 그냥 저곳 아무 데나 오르면 된다는 말씀이셨다. 단지 농으로 들었는데, 아니었다.

숲을 들어서는 초입 가장자리는 언제 불이 지나갔냐는 듯 높게 자란 풀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 흔한 오솔길도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뒤를 따르는 우리를 위해 풀을 헤치고 길을 만들며 산을 오르는 스님의 모습은 더 이상 등운산이 상처 입은 곳이 아님을 무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불탄 이후 내가 새로운 나무를 심었어요. 흑송이라고. 전부 검은 나무들이지요. 내년에는 산에 또 새로운 나무를 심을 예정입니다. 백송입니다.”

온몸이 검게 그을린 소나무들의 모습을 ‘흑송’에 비유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비록 불에 타 생명을 잃었지만 100년 넘게 한결같이 이곳을 지켰던 소나무들이 죽어서도 이 자리에 그대로 있길 바라는 마음인 것이다. 내년에는 ‘백송’을 심을 것이라는 말은, 불탄 나무의 껍질이 자연스레 벗겨지면 그 안에 감춰진 하얀 목질부가 드러나게 되는데, 검게 탄 소나무가 스스로 쓰러질 때까지 이 자리에 그대로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이리라. 오랜 시간 고운사의 숲을 지켜왔던 소나무들은 선 채로 서서히 땅으로 스며들면서 다른 생명의 자양분으로 조용히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으로

40년 동안 등운산을 오르며 마음을 주고받았을 사철 푸르던 소나무 숲은 이제 없다. 송이 채취를 위해 다녔던 작은 길들이 사람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제 소나무와 함께 송이도 터전을 잃었으니 이 숲을 찾는 발길은 더 뜸해질 것이다. 사람이 뜸할수록 야생동물들은 더 안전하게 숲을 누리게 된다. 화재 이후 발길이 뜸해진 숲에는 벌써 동물들이 만든 길이 여러 갈래 생겼고, 곳곳에 이들의 흔적이 즐비했다. 큰 화재를 무사히 피한 듯해 감사할 따름이다.

스님께서 오랜 시간 한 걸음씩 내디디며 만든 인연이 아쉽지만, 불에 탄 숲은 그대로 두더라도 연기법(緣起法)에 따라 새롭고 변화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것이 이 세계의 변하지 않는 진리다.

“불교의 진리는 연기(緣起)입니다. 오랫동안 보아온 이 숲은 스스로 알아서 돌산에 가장 잘 맞는 나무를 길러냅니다. 산불은 이곳을 지키던 소나무를 조금 빨리 다른 나무로 대체하는 계기였을 뿐입니다. 이제 숲도, 사찰도 불타기 전 과거로 돌아가는 것보다 미래를 위해 변화를 수용해야 합니다. 기후도 변화하는 만큼, 불탄 나무를 베고 다시 다른 나무를 심는 게 아니라 이 땅에서 스스로 자라는 나무들이 잘 자라게 해주는 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검게 탄 속내야 모르겠지만, 숲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력이 넘쳤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모든 생명을 집어삼키고 폐허로 만든 화마 또한 피할 수 없는 인연이었음을 겸손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숲에서는 새로운 생명들이 움트며 자라고 있었다. 화마 때문에 멈춰 선 게 아니냐고 걱정하는 우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멈춰 선 게 아니라고, 새로워지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고 숲은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늘을 덮던 솔잎이 사라진 후 햇볕은 숲의 바닥까지 들어왔다. 이 뜨거운 햇살이 언제 멈출지 모르기에 어떤 생명들은 이 기회를 잘 살려야만 한다. 싸리나무와 진달래, 옻나무, 붉나무, 산딸기 등이 주인공들이다. 햇볕을 좋아하는 작은 키 나무들이 새로운 군락을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 오랜 시간 이 터의 주인공이 될 굴참나무와 신갈나무, 벚나무, 물푸레나무 등 큰 키 나무들도 이미 1m 가까이 자라나 있었는데, 이에 질세라 고사리가 제 세상을 만난 듯 잎을 뻗었고,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억새도 곳곳에서 올라와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다. 기우였던 셈이다. 그동안 정체되었던 숲이 오히려 새로운 생명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무상의 법문을 듣다

“법문을 통해 배우는 무상(無常)을 이렇게 불에 탄 등운산 숲에서 깨닫는 거예요. 자연은 단지 글자가 아니라 실제로 그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그대로였다면 너무 천천히 변하기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산불이 그 시간을 굉장히 압축시켜서 우리에게 보여준 거예요. 이 압축된 모습이 ‘무상’이라는 깨달음 본연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다. 고운사를 둘러싸고 있는 숲이 ‘소나무 숲’이라는 생각은 ‘무상’을 글로만 이해한 데에서 생긴 오류임이 틀림없다. 생각이 고정된 탓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짧게는 10년 후쯤, 등운산은 굴참나무와 단풍나무 숲이 될 것이다. 고운사를 감싸고 있을 건강하고 활기찬 굴참나무 숲과 단풍나무 숲을 생각하면 벌써 설레기 시작한다.

“부부나 자식 간에도 간섭을 너무 하면 사이가 틀어져요. 남의 삶에 너무 간섭하지 말고, 서로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켜보는 것이 중요해요. 자연도 똑같은 것 같아요. 인간이 간섭하지 말고, 자연을 믿고 맡겨주면 좋겠습니다.” 당장은 ‘구름을 타고 오르는 산’이라는 말처럼 맘 편히 오를 수 있는 숲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일 것도 없다. 100년이 훌쩍 넘도록 늘 푸르던 소나무 고목들이 고운사를 울창하게 둘러싸던 시절은 지나갔다. 앞으로 다가오는 100년의 고운사는 저 홀로 푸르른 겨울이 아니라 형형색색 변화하는 가을이 아름다운 사찰로 기억될 것이다. 산은 그 자체로 무상을 실현하고 있다. 이번 가을, 그곳으로 찾아가 살아 있는 법문을 듣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이자 환경·생태계획 분야의 전문가다. 숲의 생명력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숲의 역할을 깊이 고민해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기후재난연구소 공동대표이자 조계종 환경위원회 위원, 영축총림 통도사 환경위원회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