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진리를 찾아서
강화 보문사

한철 달아오른 땅으로 서느런 바람이 불어온다.
산비탈 나뭇잎이 노랗게 물든다. 새소리가 맑고 하늘은 높다.
문득 생각이 떠오른다. ‘아, 가을이구나.’ 게으른 마음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동안
이미 가을은 당도하였다. 비로소 여름은 기억 속으로 흩어진다. 머지않은 어느 날에는
겨울을 알리는 풋눈이 내릴 것이다. 환한 광경들이 이렇게 찰나마다 우리를 스친다.
하기는 늘 그렇지 아니한가. 변화하는 계절은 매 순간 자신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성취를 드러낸다. 그러니 매 순간 알아차리도록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인다. 모두 관세음보살인 ‘보문시현(普門示現)’의
진리가 마음에 번져 간다.
두루 ‘보(普)’, 문 ‘문(門)’, 보일 ‘시(示)’, 나타낼 ‘현(現)’. 『법화경』에서 유래한 ‘보문시현’은 자유자재하게 모습을 바꾸어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관세음보살은 가족, 친구, 동물로 현현해 가르침을 주며, 망념을 비워 내는 자연 풍광이 되어 텅 빈 충만을 선사한다. 도처에 가득하기에 찾는 이는 반드시 찾게 되는 이치가 명백하건만, 미욱한 중생은 의심에 휩싸인다. 관세음보살을 정말 찾을 수 있을까? 인천 강화군 석모도, 일주문 문구 앞에서 흐트러진 마음을 가라앉힌다. ‘落袈山普門寺(낙가산보문사)’.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고 일컫는 ‘낙가산’에, 관세음보살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의미의 ‘보문사’가 자리 잡았다. 과연 관음도량이다. 이제 준비가 되었다.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나아간다.
깨달음을 향한 보문사의 길
일주문을 지나 낙가산을 오른다. 소나무 향기 그윽한 숲길을 10여 분 걸어 보문사 경내에 발을 들인다. 날아갈 듯 날개를 펼친 낙가산 능선 아래에서 전각 행렬이 객을 맞는다. 사찰 규모가 제법 크다. 갯벌 너머로 바다만 펼쳐진 한반도 서쪽 끄트머리, 세상의 끝 같은 낙가산 자락임에도 사람들은 이만한 규모의 사찰을 도모했다. 터를 닦고, 실어 나르고, 지어 올린 공력을 헤아린다. 간절하게 바라고 착실하게 쌓지 않았다면, 변방인 이곳이 어떻게 관음도량이 되었으랴.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회정 스님이 창건했다는 635년부터 지금까지 자그마치 1,400여 년간, 보문사를 참배한 이들 또한 성불의 발원을 아로새겼다. 옛사람의 이야기를 들여다볼수록 자비와 원력이 선명해지니, 신실했던 그들은 보문사에서 만난 첫 번째 관세음보살이다.
길은 극락보전, 와불전, 마애관세음보살로 이어진다. 보문사의 중심인 극락보전에서는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협시한다.

무한한 생명, 무한한 빛의 아미타불을 올려다본다. 모든 것은 나고 죽는 일 없이 무한한 생명 하나이고, 안과 밖 없이 무한한 빛 하나이거늘, 나고 죽는 시간과 안팎의 공간이 따로 있다 착각하여 고통받는 이 누구인가. 놓아 버리는 즉시 깨달음인데, 착각을 끝까지 붙들어 잡는 이 누구인가.
극락보전에서 나와 오백나한을 둘러보고 와불전에 닿았다. 내부에는 열반하는 부처님을 길이 10미터 규모로 형상화했다. 부처님은 육신의 기운이 꺼지기 전에 말했다. “여래는 육신이 아니라 깨달음의 지혜이다. 육신이 떠나도 지혜는 영원하다.” 보문사 와불은 옆으로 반듯하게 눕고는 손과 발을 단정히 두고 무심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죽는다는 두려움을 넘어선 걸까? 아니다. 죽음이 없다는 진실을 알아서일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넘어서야 할 두려움도 없다. 무한한 생명과 무한한 빛의 이 지혜가 세상을 밝혀 주길.
마지막으로 관음도량 보문사의 상징인 마애관세음보살에게 인사를 건넨다. 수백 개의 계단을 밟고 올라 다다른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이 높은 곳에서 마애관세음보살이 순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바세계에 쓸려 매일 아우성치던 머릿속이 고요하다. 가파른 비탈을 걸어 오르는 사이에 절로 겸허해진 까닭이다. 올라간다는 건 지금 여기가 낮다는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것. 기도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몸을 낮추고 얼굴을 바닥에 댄다. 보문사로 이끌어 준 인연에, 기도하는 이 인연에 감사한 마음이 샘솟는다. 순례자를 굽어보는 마애관세음보살의 얼굴은 온화하고, 우리 가슴도 따뜻하다. 극락보전과 와불전을 참배하고, 오르고 오르며 나를 내려놓는 여정이 보문사에서 만난 두 번째 관세음보살이다.
여정의 끝이자 시작
기도를 마치고 뒤돌아서자 놀라운 광경이 생각을 멈추게 한다.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태양이 하늘에 낙조를 흩뿌리고, 한때의 완연해진 하늘이 갯벌과 바다에 붉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태양에서부터 평화로운 바람이 밀려들어 낙가산을 물들인다. 망념은 사라지고 텅 빈 충만이 차오른다. 낙조가 나이고, 내가 낙조인 무분별이 마음에 가없는 평화를 안긴다. 무분별 속에서 중생은 깨닫는다. 모든 것이 관세음보살이었다. 이것만이 영원하고 무애한 진실이다. 보문사에서 만난 세 번째 관세음보살은 바로 나, 다시 말해 당신이며, 곧 세상이다.
마애관세음보살
보문사에서도 마애관세음보살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419개의 계단을 하나씩 밟고 낙가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한다. 힘들더라도 포기하면 안 된다. 그곳에서 만나는 풍경이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워서다. 산자락, 마을, 갯벌, 섬, 바다가 차곡차곡 포개져 한 덩어리로 하늘에 잇닿은 장면은 누가 보아도 입이 떡 벌어지는 장관이다. 특히 노을이 질 때는 광활한 붉은 바다가 한눈에 잡히는 달뜬 순간을 선사한다. 풍광이 이토록 빼어나거니와, 눈썹바위를 닫집 삼아 암벽에 새긴 마애관세음보살도 신심을 자아낸다. 높이 9.2미터에, 너비 3.3미터 마애관세음보살은 1928년 조성한 것으로 역사는 길지 않지만, 현재 한국의 주요 관음도량 보문사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와불전과 오백나한
극락보전 인근에 길이 40미터, 폭 5미터인 바위 ‘천인대’가 있다.
천인대는 천 명이 모여 법회를 열 수 있을 정도로 큰 바위라는 뜻이다. 중요한 자리이니만큼 보문사는 이곳에 와불전을 세워 부처님 열반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했다. 와불전의 열반하는 부처님은 곧은 자세와 평온한 표정으로 숭고한 감정을 끌어낸다. 와불전 옆은 오백나한상과 33관세음보살 사리탑이다. 2005년에 조성한 사리탑은 삼층석탑으로, 각 층에 열한 명씩 총 서른세 분의 관세음보살을 새겼다. 관세음보살 위로는 용머리를 두는 등 정성껏 장엄해 관음도량의 격을 한층 높였다. 사리탑 뒤편 오백나한 역시 표정과 모습이 각각 달라 불사에 들인 마음을 살피기에 충분하다. 와불전과 오백나한은 귀한 볼거리인 동시에 보문사 순례의 중심인 셈이다.
석실
나한전으로도 불리는 석실은 보문사가 명성을 떨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장소다. 한국에서 드문 석굴 사원이라는 점부터 역사적 가치가 남다르다. 더구나 보문사를 창건한 해에서 불과 몇 년 뒤에 조성됐다는 설화가 전한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가 방문해 기도한, 그야말로 보문사 자체인 곳이다. 석실 조성 설화는 이렇다. 보문사가 산문을 열고 14년 뒤인 649년, 어부들이 물고기 대신 돌덩이 22개를 건져 올렸다.
사람을 꼭 닮은 기묘한 형상에 두려움을 느낀 어부들은 돌덩이를 바다에 버리고 다른 데로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물고기가 아닌 돌덩이들을 건졌다. 결국 보문사 동굴에 돌덩이들을 봉안하였고, 이후 석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언제 들어도 청아한 기도 소리가 울리는 석실에서 보문사의 장구한 역사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