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힘을 빼는 연습
광명 금강정사 ‘마음챙김 선명상 템플스테이’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일상에서 고요히 나를 들여다보는 곳. 광명 금강정사의 선명상 템플스테이는 ‘지금 여기’, ‘여유롭게’, ‘힘을 빼는 연습’이라는 키워드로 요약된다. 도심에서 불과 20분 거리, 광명 이케아에서 점심을 먹고 곧장 입소할 수도 있다. 도량에 서면 발밑에는 도시의 불빛이, 머리 위에는 별빛이 가득하다. ‘마음챙김 선명상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법당에 앉아 호흡을 세며 명상하고 구름산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분주한 일상의 호흡은 어느새 고요한 숨결로 바뀐다.
이해로 시작되는 수행
템플스테이에 참여한 날은 마침 문학을 활용한 마음 치유 프로그램 ‘금강위크 - 내 안에 부처를 켜다’ 행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참가자들을 맞이하는 일주문에 걸린 현판에는 ‘교육과 복지의 도량 구름산 금강정사’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금강정사는 도심 포교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금하 광덕 스님(1927~1999)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1991년 개원한 절로, 불자들의 수행 공간을 넘어 지역 주민 누구나 찾아와 마음을 돌볼 수 있도록 문화 포교의 길을 꾸준히 넓혀왔다. 이곳의 활기는 입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 지향점은 선명상 템플스테이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정은 짜임새 있고 간결하다. 설명은 명료하면서 체계적이다. 오리엔테이션부터 스님과의 차담, 선명상 체험, 구름산 포행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전통 수행의 맥락을 지키면서도 현대인의 생활 언어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특징은 ‘지시’가 아닌 ‘이해’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이곳의 가르침은 단순히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한 어조와 상세한 설명으로 자연스레 마음을 열게 만든다. 그 분위기는 프로그램의 첫 순간, 오리엔테이션부터 드러난다. 법당 예절과 합장, 절하는 법, 예불의 구성, 템플스테이의 역사까지 45분간 이어진 설명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감을 준다. ‘어떤 행동을,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곁들여지자 참여자들은 그간 궁금했던 점을 거리낌 없이 질문했다. 처음엔 서툴던 동작도 이해하고 나니 움직임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저절로 마음의 빗장도 느슨해졌다. 이어진 스님과의 차담(茶談)에서는 참여자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솔직하게 꺼냈다. 친구와 함께 온 이, 아버지와 딸, 혼자 온 참여자, 태교 여행을 온 산모까지. 스님은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경청한 뒤,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의 감각적 경험에 빗대어 쉽게 풀어냈다. 추상적인 교리가 일상의 언어로 바뀌는 순간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자연스레 싹텄다. 불교 수행은 특별한 의식이 아니라 생활방식이라는 것. ‘계율과 교리’는 곧 ‘내가 세울 수 있는 나만의 생활방식’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맨발로 걷고 숨을 세다
‘마음챙김 선명상 템플스테이’는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처럼 다채롭게 구성됐다. 1박 2일 동안 걷기 명상, 좌선과 마음챙김, 108배 절 수행, 구름산 둘레길 포행까지 알찬 프로그램이 조화롭게 이어진다. 무엇보다 불교 명상 전문 지도 자격을 갖춘 지도법사 동하 스님의 세심한 지도로 초심자도 무리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땅하고 내 맨발이 닿는 면을 느껴보세요. 발끝 감각을 그대로 느끼며 걸어봅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확인하는 거예요.”
첫 번째 명상은 대웅전 앞 잔디 마당에서 진행된 걷기 명상이었다. 양말을 벗고 맨발로 잔디밭을 걷는 동안, 스님은 작은 종을 규칙적으로 치며 발걸음을 이끌었다. 규칙은 단순했다. 첫째, 발끝 감각에 집중하며 지금, 이 순간 나를 알아차릴 것. 둘째, 마음이 흩어지면 종소리로 돌아올 것. 평범했던 걸음에 ‘알아차림’을 더하니 걷기는 곧 명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맨발로 걷는 게 망설여졌다던 참여자 권지희 씨(36, 광명)는 “벌레를 싫어해 맨발로 풀밭을 걷는다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막상 해보니 아무렇지도 않았다”며 “집에서는 생각이 꼬리를 물곤 했는데, 잡념이 사라지는 경험이 뜻밖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쉽니다. 깊은 호흡은 부교감 신경계를 활성화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법당에서 이어진 좌선 시간에는 들숨과 날숨을 세는 전통 수행법 ‘수식관(數息觀)’이 소개됐다. 스님은 여기에 현대 심리학에서 검증된 ‘마음챙김 기반 스트레스 완화 프로그램(MBSR: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명상을 덧붙여 설명했다. 불교 명상이 단순한 종교 의례가 아니라, 과학적으로도 심리 안정과 스트레스 관리에 효과적인 생활 기술임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틈틈이 일상의 여유를 찾으려 참여했다는 강지원 씨(28, 서울)는 “명상하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됐고, 마음을 다스리는 또 하나의 방법을 얻게 된 것 같다”며 “스님의 ‘나를 다스리는 힘은 내가 세운 루틴에서 나온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고 전했다.
고통을 직면하는 연습
다음 날 아침, 새벽예불을 마치고 이어진 108배와 염주 만들기에서 동하 스님은 절의 고통을 피하지 말고 관찰하라고 강조했다.
“108배를 할 때는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해 해줄 수 없어요. 고통은 당연하게 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내 몸에 전해지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살펴보세요. 그 순간 고통을 바라보는 ‘나’가 따로 있다는 걸 알 수 있게 됩니다.”
무릎과 허벅지가 뻐근해지고 땀이 맺히는 순간, 몸에 힘을 주면 오히려 고통은 더 커진다. 하지만 발끝과 무릎을 모아 바른 자세를 취하면 한결 수월해진다. 108배는 몸과 마음의 불편을 직면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수행이었다.
절마다 한 알씩 꿰어낸 염주는 절 수행을 기억하게 하는 작은 증표가 됐다. 108배를 함께 마친 오미경·박찬오 부부(47, 54, 서울)는 완성된 염주를 목에 걸고 편안한 미소로 아침 공양을 한 뒤 구름산 포행에 나섰다.
“여유롭게, 회사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지금 이 풍경을 보세요. 이 순간을 만끽하세요.”
구름산 포행도 같은 맥락이다. 스님의 지도에 따라 둘레길을 걷다 마주한 바람과 나무, 풀 냄새에 집중하자 그동안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내던 감각이 하나씩 되살아났다. 발끝 아래 흙길은 폭신했고, 나무 사이로 스치는 바람과 새소리가 귓가에 작은 노래처럼 맴돌았다. 풀잎에서는 여름 내내 간직한 향이 은은하게 번졌다.
자연이 오래전부터 건네던 가르침을 비로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동하 스님은 명상의 핵심을 ‘알아차림’이라고 강조했다.
“무지로 인해 나쁜 습관이 생기고, 나쁜 습관이 쌓여 나쁜 결과를 만듭니다. 하지만 알아차리면 그것을 멈출 수 있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마음
금강정사가 ‘마음챙김 선명상 템플스테이’를 기획한 이유는 분명하다. 간화선은 깊이 있는 수행이지만 초심자에게 진입 장벽이 높다. 법문을 이해하고 화두를 붙잡는 일은 수행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쉽지 않다. 금강정사는 이 간극을 메우고자 ‘쉼과 치유’를 전면에 내세우고, 전통 수행을 기반으로 현대인의 불안과 피로를 보듬는 길을 제시한다. 쌓인 연습은 일상에서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이어지고, 이는 참선 수행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된다. ‘교육과 복지의 도량’이라는 현판 문구처럼,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쉼과 배움이 공존하는 터전을 열어둔 셈이다.
“자동차가 달리다 멈추듯 하세요. 쉼은 멈춤에서 시작됩니다. 지치면 언제든 오십시오. 잠시 멈추어 차 한 잔 나누고, 다시 일상으로 내려가면 됩니다.”
구름산 포행을 마친 뒤 동하 스님이 건넨 인사말을 뒤로한 참여자들의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번졌다. 1박 2일, ‘마음챙김 선명상 템플스테이’가 남긴 것은 화려한 체험이 아니라, 일상에서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알아차림의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