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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절밥·책, 행복 3종 세트

글. 유승화

그림. 현밀 스님

볼에 스며드는 바람,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 눈을 감고 들으면 기분이 몽글몽글 좋아지는 물소리.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이 좋았다. 자연 경관이 잘 담긴 사극 드라마를 즐겨보았고,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절에서 하루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곤 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어머니께서 잠시 생각을 비우고 싶다며 절에 다녀오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하룻밤을 묵고 오신다는 것이었다. 그때 처음 ‘템플스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템플스테이를 다녀오시고서는 곧 우리 두 자매에게도 꼭 가보라고 권유하셨다. 이때다 싶어 나는 언니와 함께 곧바로 순천 선암사로 향했다. 우리가 간 때는 겨울이었다. 산속이라 춥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우리가 묵은 방과 맞이해 주신 분의 따뜻한 환대 덕분에 오히려 포근했다.

첫날은 공양 후 바로 잠에 들었다. 해가 지니 절은 고요했고, 모든 곳이 조용해져 일찍 잠드는 것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둘째 날이 밝자 우리는 최대한 속세와 멀어지고자 휴대폰을 멀리 두었다. 대신 도서관에서 빌려온 조선시대 배경의 소설책을 읽었다. 그 어느 곳보다 템플스테이에서 읽던 책이 제일 잘 읽혔다. 휴대폰을 멀리하니 연락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왜인지 모르게 마음 한편이 편안해졌다. 매일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심지어 ‘다음번에는 혼자 와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

얼마 후, 나는 혼자 구례 사성암으로 템플스테이를 떠났다. 언니랑 함께일 때와 달리 혼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말하지 않게 되었고, 조용한 방은 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고요함.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마침 비가 내리던 날 밤이어서 창문 밖에서 빗방울이 투둑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고요히 앉아 있었다. 요즘 말로 ‘멍 때리기’였다. 생각을 안 하니 잡생각도 하지 않게 되고 자잘한 걱정거리들도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방 안에 놓여 있던 책이 눈에 들어왔다. 부처님 말씀에 대한 책이었다. 그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구절은 ‘모든 집착을 버리면 마음이 평안해진다.’였다. 이 문장은 지금도 내 삶의 지침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인간관계나 미래의 걱정 등 ‘아직 오지 않은 상황들을 생각해서 굳이 스트레스를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을 보기 전에는 나도 매사에 집착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나가는 인연 하나하나를 쉽게 놓지 못하고 집착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과연 이런 집착이 내게 어떤 것들을 불러올까?’ 지나간 일에 집착하면서 불안함과 짜증 같은 부정적 생각을 키우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처럼 떠나는 사람은 붙잡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은 막지 않아야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그날 템플스테이를 하며 읽었던 그 문장. 그 시간 이후부터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되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단어는 ‘무소유’였다. 나는 소유욕이 강해 소비 습관이 좋지 않았다. 좋은 물건을 가지고 싶었고, 예쁘다고 생각하면 옷도 자주 샀다. 그런데 어차피 나이가 들어 죽게 된다면 다 버려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을 오래 아끼며 쓰는 삶을 배우게 되었다. 혼자 떠난 템플스테이는 나를 되돌아보게 하고 조금 더 건강한 생각을 품도록 도와주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혼자 템플스테이를 가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템플스테이를 다니며 굳이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템플스테이는 그저 평안히 쉬다 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꼭 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템플스테이를 하는 날 하루만큼은 휴대폰이나 컴퓨터에서 최대한 멀어져 보는 것이다. 바람도 느끼고 산에 올라 초록색으로 물들여진 풀들도 바라보고, 맛있고 건강한 절밥을 먹는 여유 있는 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값진 선물이다. 그 순간을 자신에게 선물한다면 그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자부해도 될 것 같다.

템플스테이는 계절마다 다른 매력이 있다. 그중 생각나는 하루는 수능이 끝난 다음 날, 마음을 비우기 위해 엄마와 언니와 함께 떠난 템플스테이다. 밖은 유독 추웠고, 안은 유독 따뜻했다. 공양을 마치고 사찰을 한 바퀴 돈 후 방에 들어와 씻고 잘 준비를 하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펑펑 쏟아졌다. 창문 밖으로 내다보니 하얗고 커다란 눈이 소복소복 내려앉았다. 하얗게 변해가는 마당을 바라보며 우리 셋은 얼굴 가득 웃음을 지었다.

절에 와 있을 때 눈이 내리는 건 상상만 해봤는데, 실제로 내리니 마치 영화 속 장면 같았다. 눈 내리는 그 순간만으로도 세상 부러운 것 없이 행복했다. 엄마와 언니, 나. 셋이 함께 내리는 눈을 보고 행복함을 만끽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던 장면이 종종 떠오른다. 특히 이렇게 더운 날에는 그 순간을 떠올리면 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이 마음이 시원해진다.

요즘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 익숙해져 행복의 기준점이 너무나 높아진 듯하다. 그럴 때일수록 나는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며 느긋하게 책도 읽을 수 있는 템플스테이에 꼭 한 번 가보기를 권유한다. 나를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경험해 보면 아마도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에 중독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마치 나처럼 말이다.

유승화 2005년생, 21세. 전라남도 곡성에 거주하며 전남대학교 의류학과에 재학 중이다. 2022년 겨울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참여한 선암사 템플스테이를 시작으로 쌍계사, 사성암, 송광사, 연곡사, 정혜사, 천은사, 해인사 등 사찰의 템플스테이를 11회 이상 다녀왔다. 사계절마다 분위기가 다른 사찰이 흥미로워 앞으로 떠나게 될 템플스테이가 더 기대된다.

현밀 스님 조계종 포교원 불교크리에이터 4기. ‘붓다밀밀’ 뭉밀이 캐릭터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행복 메시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