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홈페이지 한국사찰음식 홈페이지
지난호 보기
sns 공유하기

웹진 구독신청최신 웹진을 이메일로 편하게
받아볼 수 있습니다.

오래된 숲에서 노인의 미소를 만나다

양산 통도사 반야암 지안 스님

글. 박사

사진. 하지권

"숲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도사 뒤편으로 영험한 산세를 펼치고 있는 영축산,
틈을 비집고 구불구불 따라가는 반야암 가는 길이
깊은 숲으로 감싸여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나무 심기를 좋아하시는 지안 스님의 손을 탄 반야암 주변 숲이
유독 짙푸르게 우거져서만도 아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유독 높게 솟은 소나무가,
소나무의 허리를 가리는 대숲이,
매화가,
동백이,
흐드러진 꽃을 달고 있는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와서만도 아니었다.
숲.
지안 스님이 평생 가르치고 키워낸 스님들이 모인다면
그분들이 이룰 장관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숲.
그것 말고는 다른 단어가 없지 않을까."

숲을 헤치고 찾아간 반야암에서 뵌 스님은 누구보다 높은 나무라기보다 가장 깊은 곳을 두텁게 덮고 있는 이끼의 언덕 같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나무들로 빼곡한 숲을 헤치고 나아가다 문득 만난 공터, 그곳만을 위한 햇볕 한 줄기가 내리 닿는 그 공터의 주인. 절을 해도 좋고 누워도 좋을 곳. 그곳에서 한나절,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웃고 실없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나는, 그렇다.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숲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숲의 씨앗, 스님의 처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통도사에서 새벽예불을 드렸던 날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 오는 그 새벽에 통도사 설법전으로 향하던 긴 행렬. 드넓은 설법전을 꽉 채운 대중들과 스님들의 장엄한 염불. 지안 스님의 처음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았던 그 풍경 속에 젊은 법학도였던 지안 스님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

시절인연을 본다

통도사 새벽예불을 듣고 출가를 결심하셨다면서요?

그렇죠. 절집에서는 업장이 녹으려고 그러는 거라고 하지. 예불을 하다가 감동받아서 눈물이 자꾸 나대. 유치하게 말이야. 그래서 그냥 스님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통도사 새벽예불을 처음 들으면 굉장히 감흥이 일어난다고 할까, 신비해요. 다른 사찰에서는 칠정례를 하는데, 통도사는 자장 스님의 창건 취지를 이어서 열한 번 절을 하는 11정례를 해요. 예불이 장엄해요.

새벽예불을 듣고 결심하시기 전에도 불교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아니요. 불교 몰랐어요. 절도 우리 학교 다닐 때는 해인사, 불국사 두 개밖에 몰랐어요. 그러다 우연히 통도사에서 좀 지내다 나온 선배가 소개해서 이곳에 처음으로 오게 됐죠.

출가하시기 전에 고시 준비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옛날에는 공부 좀 하면, ‘고시공부!’ 하는 식이었어요. 사실은 사실이니까. 남들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책 읽기를 좋아하니까 공부도 좀 한 셈이지. 공부하려면 책을 많이 봐야 되니까. 절에 와서도, 강원에서 생활할 때도 남 못지않게 열심히 책을 봤어요.

인터뷰를 보면 스님은 옛날에 굉장히 무서운 분이셨다고 하더라고요. 별명이 ‘미제 도끼자루 강사스님’이셨다면서요.

그런 걸 페이크 뉴스라 하는 거야. (웃음) 처음 강사 할 때는 젊었거든. 우리 은사스님이 살아계셨던 과거에는 학인들이 잘못한 것을 하나하나 짚어주셨죠. 예를 들면 70년대 후반엔 예불에 빠지면 안 되었는데, 학인 한 명이 예불에 안 나오고 지대방에 드러누워 있는 거라. 그래 마침 그때 ‘미제 도끼자루’는 없었고, (웃음) 장작 가지고 들어가서 두툼한 이불 위를 내려쳤다고. 나한테 맞아 이마가 터져서 피가 나는데, 가사장삼 갖춰 입고 내 방으로 참회하러 와요. 요새는 그리 못하지. 내가 두들겨 맞지. 그래도 그 시대는 산중에도 법도가 살아 있었고 어른들이 계셨고.

그런데 어떻게 지금은 이렇게 자애로운 분이 되셨어요?

나이가 들면 부드러워지는 거야. 나이가 들어도 딱딱하면 그거 잘못 사는 거야. 그러려고 애쓸 것까지는 없지만 자연히 그렇게 돼요. 나이가 들면 그냥 편안하게 부드럽게 남 대해주고 웃어주면 그게 법문이야. 노인의 미소는 백대의 법문이야. 그런 줄 알면 돼. 인상 쓰며 살지 말아. 좋은 얼굴 일그러진다.

옛날에 그렇게 엄격하셨을 때랑 지금 이렇게 부드럽게 가르치실 때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시절은 시절의 운수가 있어요. 이렇게 해야 될 때가 있고. 그 시절마다 가능한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이게 참 묘해요. 인간의 근기에도 변화가 오고. 옛날엔 산중 전체에 법도가 살아 있어서 엄격하던 시절인데 요새는 이미 그리 안 돼요. 그런 시대는 지나갔어. 그러니까 시절 인연을 본다고 하잖아요. … (웃음) … 내가 통도사서 시집살이 실컷 했다. 내만큼 젊은 시절에 시집살이 많이 하고 산 사람 없을 거야.

"불교, 깨달음…. 선에서 말하는 ‘견성을 한다, 성품 자리를 본다’는 얘기거든. 이걸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투로 하면 자기 정체, 즉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거예요. 내가 누구냐? 이걸 확인하는 게 견성이고 깨달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배우는, 내가 나를 알고자 하는 공부인 거죠."

내가 나를 배우는 공부

불교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불교는 내가 나를 배우는 종교다” 하셨죠. 어떤 의미인가요?

불교, 깨달음…. 선에서 말하는 ‘견성을 한다, 성품 자리를 본다’는 얘기거든. 이걸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투로 하면 자기 정체, 즉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는 거예요. 내가 누구냐? 이걸 확인하는 게 견성이고 깨달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나를 배우는, 내가 나를 알고자 하는 공부인 거죠.

팔만대장경이라고 할 정도로 불교에는 경전이 많은데요. 그 많은 경전을 보셨잖아요. 딱 한 구절로 요약해서 말씀해 주시면?

경전을 총망라해서 말한다면 『화엄경』이 최고의 경전이에요. 『화엄경』의 핵심 대의 한 구절을 뽑아서 말하면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 이거죠. 근본불교부터 대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교가 하는 말이 일체유심조예요. 일체유심조는 본질적인 근원을 찾으라는 말이거든.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니 기쁘고 슬프고 괴로운 것이 한 가지잖아요. 넓은 의미로 볼 때 모든 것이 내 마음이 만들어낸 거니까 사실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똑같은 거예요.
우리는 선택의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햄릿이 독백하잖아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런데 부처님 10대 제자 가운데 ‘지혜제일’이었던 사리불 존자의 말은 완전히 반대예요. “난 사는 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죽는 것도 원하지 아니한다.” 사는 것도 원하지 아니하고 죽는 것도 원하지 아니하면 원하는 게 없지. 사는 거 죽는 거 원하지 않은 사람한테 원하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햄릿의 독백은 사리자의 독백하고 비교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주 유치한 얘기고.

이제 막 불교공부를 시작하는 사람한테 어떤 경전을 추천하면 좋을까요?

불교 경전 중에 제일 처음 이루어진 경이 『수타니파타』라는 경입니다. 아주 간단한 문구들만 쭉 수록돼 있어요. 부처님 최초의 설법을 기록해 놓은 원음이랄까, 육성이 살아 있는 경이죠. 『법구경』도 앤솔로지 시집 형태로 되어 있고요. 『아함경』도 번역되어 나온 게 상당수 있을 겁니다. 그다음 대승불교를 공부하려면 『대승기신론』 같은 것이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개론서니까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스님도 책을 많이 내셨잖아요. 스님께서 출간하신 책 중에서 이거 하나는 권하고 싶다, 이 책은 읽었으면 좋겠다고 한 권만 추천해 주신다면 어떤 책일까요?

한 권만? (웃음) 『금강경 강해』는 원래 2010년도에 나온 걸 조금 수정해서 냈는데, 뒤에 ‘이야기란’을 넣어서 불교를 지루하지 않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썼어요. 그 책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고요. 그다음 올해 봄 나온 『지안 스님의 승만경 강의』가 있어요. 이걸 불교 신도들 누구나 읽어보기를 권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대승불교를 좀 정밀하게 알려는 사람들은 읽어보면 좋다고 권하고 싶어요.

책도 많이 내셨지만 법문도 많이 하셨잖아요.

그거야 내가 챔피언이지. 승가 교육에는 내가 제일 오래 종사했어요. 통도사에서 20년, 은해사에서 10년, 직지사에서 3년 등 약 40년 동안 스님들을 상대로 강의를 해왔으니까. 잘하고 못하는 거는 놔놓고 오래 한 거는 내가 제일이지.

스님께 배운 제자 스님들만 모아도 이 산을 채울 것 같아요. 정말 많은 강의를 하셨는데, 법문하실 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질문을 안 하는데? (웃음) 쓸데없는 질문을 하지. “스님, 왜 중이 되셨습니까?” 같은.

나를 버리고 진정한 나에게 돌아간다

다른 인상적인 질문이 있었다면요?

한 번은 누가 찾아와서 “스님,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을 편안히 살 수 있습니까?” 묻더라고. 그래서 “그래, 어떻게 하면 편히 살 수 있습니까? 그 생각을 딱 놓치지 말고, 계속 내가 편히 살아야 되겠다. 이 생각 가지고 계속 나가면 편안해질 때가 온다.” 이랬지. 편안해질 때. 그때가 온다. 이러니 이해를 못 하더만. 자기가 원하는 게 있으면 원하는 그 대상을 선한 쪽에 넣고 딱 보면 나중에 그럴 때가 와요. 이게 아주 참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뜻이 있는 말이야. 원하는 건 언제든지 와요.

『금강경』 같은 경전에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번뇌가 일어나는 마음을 눌러놓으라 이 말이야. 괴롭다, 불안하다, 초조하다, 불만스럽다. 눌러야 될 마음이다. 그 마음 눌러놓으면 편안해져. 그런데 그게 잘 안되지. 그러나 수행을 하면 눌러질 때가 와. 개인마다 다르지만은. 『화엄경』에서는 “선용기심善用其心”이라 그랬어. 그 마음을 잘 써라, 이렇게 경문에 써놨다고. 『금강경』에는 똑같은 마음인데, 항복기심이라 이랬거든. 불교는 단순해요. 수행이라는 게 별거 아니야. ‘항복기심’, ‘선용기심’ 하면 다 끝나는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끝나는 거야. 그게 잘 안되니까 문제지. 그런데 부처님은 부처님이 됐잖아.

불교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게, 불교 공부는 다른 공부하고는 완전히 다른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 거구나, 그래야 공부가 되는 거구나, 싶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해야 할까요?

‘내가 나를 버리면 진정한 나에게 돌아간다.’ 이건 내가 만든 명언이에요. 내가 나를 버린다는 건 자기 집착에서 떠나는 거야. 집착이 병이잖아요. 내가 나를 ‘버린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떠난다’는 말이야. 내가 나를 떠날 때 나중에 어디로 가느냐? 진정한 자기를 향해…! “행행본처 지지발처行行本處 至至發處”라는 말이 있어요.
집착을 버리라는 말은 대승 경전에 두루 나오는 말이에요. 집착을 버리는 걸 달리 말하면 나를 버리는 거야. ‘나’라는 것을 앞세워 놓으니까 자꾸 집착이 생기잖아. 자기 자신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버려라, 이 말이야. 이게 중요한 거예요. 그래야 수행이 되는 거예요.

스님은 거의 평생을 절에서 사셨잖아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데, 어떤 때 제일 행복하신지 어떤 부분이 제일 좋은지 궁금해요.

이 주위에 숲이 있잖아요. 나무도 있고. 걷는 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그러다 보면 산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보고, 또 하늘에 구름을 바라보고…. 보고 있는 이 자체가 굉장히 기뻐요. 루소가 그런 말을 했잖아요. “자연으로 돌아가라.” 루소의 말을 음미하면서 ‘나는 자연으로 돌아왔노라.’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글자 적혀 있는 책만 경전이 아니에요. 영축산 전체가 경전이다. 산의 모든 경치가, 이 비탈 저 비탈 서 있는 나무들이 전부 경전의 글자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고 가벼워져요. 그러면 지낼만한 거지, 뭐.

평생 글을 보신 스님께서 말씀하시니 더 와닿는 것 같아요. 끝으로 이 시대에 승가의 가치는 무엇인지 한 말씀 부탁드리며 질문을 마칠까 합니다.

원래 ‘승가’라는 말은 비본질적인 문제를 떠나서 본질적인 문제를 추구하기 위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이좋게 모여 사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스님들이 출가를 하면 주로 산사로 많이 갑니다. 세속 환경하고 생활 자체가 바뀌어요.
우리나라 승가로 말하면, 자연환경이 빼어난 건 말할 것도 없고 물도 맑고 공기도 맑은 고요한 곳이에요. 게다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 습관, 주로 채식만 하는 식사 풍습, 평생 독신 생활. 이런 환경 속에서 사는 건 정신적으로 문화재감이에요. 요새는 국가유산이라고 한다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승가는 아주 높은 가치와 의미가 있죠. 이 세상이 자꾸 탁해지고 혼란스러워지는데, 그나마 조용하고 맑은, 물리적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런 공간을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곳이 있다는 건 큰 의미가 있지요.

지안 스님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후 통도사 강원의 강주를 비롯해 조계종 고시위원장과 교육원 역경위원장, 직지사 불전한문승가대학원장, 서울불학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하며 30여 년간 교학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써 왔다. 현재 통도사 반야암에 주석하며 반야불교문화연구원의 원장직을 맡고 있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불교덕후’로도 유명하다. 방송과 일간지 등 다양한 매체 를 통해 책과 문화를 소개해 왔으며, ‘책 듣는 밤’, ‘책 듣는 저녁’으로 대중과 만났다. 『나에게, 여행을』, 『가꾼다는 것』,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