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다른 부부,
절에서 ‘나와 우리’를 만나다
브릴로프스키 레오토마·이민영 부부와 함께 떠난 화성 용주사 템플스테이
글. 김수정 사진. 하지권
‘운명’을 믿지 않는 여자와 ‘인연’을 소중히 하는 남자가 만났다.
오직 자신만을 믿으며 인생을 개척해 온 지하철 정비사 이민영 씨와,
좋은 인연들을 만난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한국문학 번역가 브릴로프스키 레오토마 씨.
국적도, 나이도, 자라온 환경도 다르지만
산을 좋아하고 절을 좋아하는 두 사람의 인생 첫 템플스테이.
정조의 효심으로 가득한 도량 용주사에서 보낸 1박 2일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조선 제22대 왕 정조의 원찰 용주사
화성 용주사는 어려서 아비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한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의 애끓는 효심이 서린 효찰대본산이다. 854년, 신라의 염거 화상이 ‘갈양사葛陽寺’라는 사명으로 창건하고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스승이던 혜거 국사가 중창한 이래, 여러 수행자가 머물며 법등을 이어오다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소실되기에 이른다. 그 후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천하제일의 복지福地로 손꼽히는 화산花山으로 옮기면서 사찰을 중창하고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사도세자의 원혼이 구천을 떠도는 듯하여 괴로워하던 정조가 보경 스님에게 『부모은중경』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해 사찰을 세울 결심을 했고, 대웅보전 낙성식 전날 밤 꿈에서 한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용주사龍珠寺’라는 사명을 내렸다. 그 후 자주 아버지의 능과 용주사를 찾았던 정조는 서울로 향하는 고갯마루에서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천히 가자, 천천히 가자.”
『대부모은중경大父母恩重經』은 깨우침이 절실하고 간절하여, 중생을 손잡고 인도하여 극락에 오르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절을 좋아하는 부부의 첫 템플스테이
“아내는 한 번 마음 먹은 건 끝까지 해내는 멋진 사람이에요. 배울 점이 많아요.”
“남편은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 나이는 저보다 어리지만 배울 게 많아요.”
서로에게 배울 게 많다며 칭찬하는 모습을 보니 천상배필인 듯한데 성격은 정 반대라는 이민영 씨와 브릴로프스키 레오토마 씨 부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민영 씨는 하기 싫은 일도 끈기 하나로 완수하는 공학도 출신으로 지하철 정비라는 쉽지 않은 분야에서 10년 동안 일한 직장인이고, 감성이 발달한 레오토마 씨는 가치관이 맞아야 마음이 움직이는 문학도로 특히 불교 서적과 역사 서적을 좋아하는 전문 번역가다. 캐나다의 명문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를 졸업해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이토록 다른 남과 여를 맺어준 것은 등산동호회였다. 캐나다 퀘백주 몬트리올에서 나고 자란 레오토마 씨는 웅장한 산을 좋아하던 청년이었다.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자주 산에 올랐고 자연스럽게 한국 사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등산로까지 울려 퍼지는 스님들의 목탁 소리에 이끌려 사찰과 암자에 발을 들이고, 천 년이 넘도록 같은 자리를 지켜온 마애불을 발견할 때면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만 같았다고.
한편, 여행을 좋아하던 민영 씨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등산동호회에 가입했다가 인연을 만났다.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매주 전국의 산을 오르며 사랑을 키웠고 봉정암만 해도 함께 네 번을 찾았다. 그리고 한국의 불교문화와 철학을 제대로 알고 싶어 용주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호기심 많은 부부가 템플스테이를 즐기는 법
눈이 부시게 푸른 봄날, 이 부부에게 용주사에서의 템플스테이는 설렘 그 자체였다. 서둘러 템플복으로 갈아입고 첫 여정에 나서니 사천왕문이 반긴다. 우락부락한 사천왕의 모습이 무서울 법도 한데 익숙한 듯 합장 반 배를 올리고 용주사 주지 성효 스님을 찾아뵈었다. 삼배를 올리니 스님이 직접 내린 차를 건네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을 건네셨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순히 과학적 틀로 읽어낼 수 없으니 수행을 부지런히 해서 ‘진짜 나’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는 성효 스님의 말씀, 웃음꽃을 피우며 한참 동안 이야기가 이어졌다. 스님은 “평소에도 둘이서 불교에 대해,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젊은 부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자비롭게 살아가라.”는 당부의 말씀도 잊지 않았다.
“이 기둥을 뭐라고 하나요? 다른 사찰에선 못 본 것 같아요.” 대웅보전을 한참 살펴보던 레오토마 씨가 가리킨 것은 ‘활주活柱’였다. 활주를 세워 처마의 처짐을 방지해야 할 정도로 화려한 장식이 일품인 용주사 대웅보전은 정조가 최고의 궁궐건축 장인을 불사에 전폭 지원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각이다. “정면에서 볼 때는 ‘천보루天保樓’였는데 뒷면에 ‘홍제루弘濟樓’라는 현판이 있죠? 정조 임금의 호인 ‘홍제’에서 온 이름입니다. 저쪽에 있는 ‘호성전護聖殿’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신 곳인데, 사도세자가 아들의 이름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현판 하나에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네요.” 사찰을 안내하는 실무자님의 설명에 눈을 반짝이며 평소 사찰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풀어가는 시간이다.
“불교와 유교가 만나는 공간이라는 점이 유난히 한국적으로 다가왔어요.” 레오토마 씨는 조선시대에 불교가 탄압만을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왕명으로 용주사가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또 서양에는 한국인의 효심과 같은 개념 자체가 없는데, 불교가 유교의 대표적인 덕목인 ‘효’를 수용하면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의 효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 한국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불교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단다.
“된장이 정말 맛있어요! 참기름, 들기름 향이 예술이네요!” 저녁 공양 내내 이어진 감탄사, 공양 후에는 연수국장 상범 스님의 지도로 모래로 만다라 그리기와 명상 수행을 체험할 수 있었다. 공들여 완성한 만다라를 흩어버리며 마음속에 묵어놓았던 이름 모를 감정들도 함께 떨쳐내고, 자신의 내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의 본 모습과 마주한다. ‘진짜 나’를 찾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화두
다음 날 새벽, 3시 반에 새벽예불이 시작됐다. 도량을 울리는 맑은 범종 소리와 스님들의 염불 소리를 들으며 부처님께 절을 올린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부모의 품을 떠나 자립하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기까지, 돌아보면 살아온 매 순간이 기적이 아니던가.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받은 인연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 말이다.
“불교의 정신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한국인에게는 소풍이나 수학여행으로 익숙하기에 사찰에 오히려 큰 관심이 없었다는 민영 씨는, 그저 오래된 건축물로만 여겼던 전각 안에서 행해지는 불교의식을 경험하며, 오랜 세월 대를 이어 내려온 수행자들의 삶과 전통의 힘을 피부로 느꼈다고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경험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은 재미와 함께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배움이 없는 인생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싫어하는 일이라도 도전해 보는 것이 수행 아닐까요?” 아침 공양 후에 ‘108원력문’과 함께 108개의 염주 알을 꿰는 108배로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고, 부처님처럼 지혜롭고 자비롭게 살겠다는 다짐,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체험해 보지 못한 것들이 새로운 화두가 되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라는 깨달음과 함께.
“정말 특별한 1박 2일이었어요. 일상에서도 늘 겸손하게 제 안의 부처를 찾는 수행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템플스테이 내내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던 민영 씨와 레오토마 씨, 두 사람의 앞날에 용주사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광명이 오래도록 함께하기를.
김수정 대학교에서 불교학을 전공했다. (사)한국방송작가협회에 적을 두고 불교계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다. 5살 때 할머니, 엄마와 다니던 작은 절의 돌 부처님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