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자세와 호흡으로 찾는 일상의 평화
고양 흥국사 ‘선명상스테이’
글. 편집부 사진. 하지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숨 쉴 때마다 파도처럼 서서히 몰려오는 이 불안감을 어떻게 낮출 수 있을까.
무한 경쟁 사회라고 하는데 괜히 매번 조급하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
사람과 함께 의지해 살면서도 때때로 외롭다.
공부하는 학생도, 일을 구하는 청년도, 일하는 직장인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 있는 이들도 그렇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와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까지.
숱한 인생의 괴로움.
이 괴로움을 멈출 방법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것도 ‘숨 한 번 잘 쉬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고양 흥국사에서 만난 ‘선명상스테이’는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흥국사 약사전 위에는 녹색 기와가 있다.
선명상스테이 첫날, 도량을 안내하던 지도법사 여가 스님이 약사전을 가리키며 물었다. “흥국사 주불전主佛殿인 약사전藥師殿 위를 보시면 녹색 기와가 올라가 있지요. 저 기와가 무슨 뜻인지 아시나요?” 흥국사는 1,4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고찰이다. 원효 스님이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하고 있을 때 북서쪽에서 비롯된 상서로운 기운을 따라 내려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땅속에서 빛나던 석조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약사전을 지은 후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이 배출될 것’이라 하여 ‘흥성암興成庵’이라 이름 지었다. 후에 조선 영조는 이곳을 왕실의 안녕과 국태민안을 비는 원찰願刹로 삼고 ‘나라를 흥하게 하는 절’이란 뜻의 흥국사興國寺로 사액하였다. 그리하여 주불전인 약사전에 걸린 편액은 영조의 친필이고 녹색 기와는 원찰의 상징이라는 뜻이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하는 명상법
우리는 선방에 고요히 앉았다. 참여자 대부분은 명상 초심자였다. 그 말은 곧 명상 초보자라도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히려 초심자이기 때문에 기초부터 확실하게 다질 수 있다. 더 깊고 바르게 배울 수 있다. 선방의 기운이 서려 있어서일까. 선명상 수업이 시작되기 전, 좌복마다 오도카니 앉은 모습들이 어설펐지만 나름의 각오들은 봄바람만큼이나 성성했다. 참여자들의 얼굴에는 궁금함과 약간의 비장함 그리고 설렘이 가득했다.
흥국사는 서울 근교에 있어서인지 유독 2030세대의 참여가 눈에 띈다. 행복을 찾으러 온 청년들 덕분에 선방에는 봄꽃보다 먼저 웃음꽃이 피었다. “일주일 내내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으러 왔어요. 서울에서 가까워서 찾아오기도 좋았는데, 막상 와보니 깊은 산속 절에 들어온 것 같아요. 풍경이 달라서 새롭네요.”라는 한 참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친구끼리 온 참여자가 서로 대화 나누다 “피곤해 죽겠어도 명상은 하고 죽어야지!”라며 던진 농담에는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야기를 나누던 차였다.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여가 스님이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행복하고 싶다면 밖에서 답을 구하지 마세요. 내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도로를 달리는데 안개가 끼면 앞이 보이지가 않죠. 폭우가 내리면 흙탕물에 물속이 비치지 않아요. 우리 마음속 번뇌 망상이 그와 같습니다. 맑아지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길이 보여요. 흙을 가라앉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은 부처님 당시부터 해 온 그 수행 방법을 가르쳐 드릴게요. 호흡명상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자세’와 ‘호흡’입니다.”
자세가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운동에서도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자세다. 자세부터 배우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 번째는 다치지 않기 위해서, 두 번째는 더 효율적으로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참선도, 호흡명상도 마찬가지다. 원활한 호흡을 위해서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 여가 스님은 좌선 수행에서의 장애를 다스리기 위해 ‘자세’와 ‘호흡’을 해부학, 생리학적으로 분석해 석사 논문을 썼을 만큼 수행의 자세와 호흡, 그 기본을 중시한다. 바른 자세가 자연스러운 호흡을 이끌고, 깊은 호흡은 마음의 고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골반의 정렬-손의 위치-어깨와 목의 위치-혀의 위치’ 네 단계로 나누어 자세를 가르쳐 드릴게요. 자세를 고쳐 앉을 때마다 호흡이 달라질 겁니다. 단계마다 10분씩 명상을 할 거예요. 몸의 변화를 느껴보세요. 내 호흡이 어떻게 변하는지 스스로 관찰해 봅니다. 달라지는 몸의 감각을 직접 느껴보면 명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겁니다.”
수행을 잘하기 위해 편하되 바르게 앉는 방법을 배운다. 몸을 편안하게 해야 호흡이 자연스러워지고, 호흡이 깊어지면 마음도 고요해진다. 스님은 숨 길이 트이면 삶이 달라진다고 했다. 인생을 바꾸는 자세를 배우는 순간인 것이다.
“몸이 긴장하면 경직돼서 병을 얻습니다. 내 몸이 완전한 이완의 상태가 됐을 때 수행을 할 수 있는 기본이 됩니다. 그래서 어른 스님들께서는 ‘몸을 먼저 조복 받아라.’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지금 우리는 몸이 편안하고 안정감이 드는 자세를 찾는 거예요.”
한 호흡에 삶과 죽음이 있다
앉아 있는 사람에게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준다니 의아할 수 있지만, 스님의 지도하에 우리는 바르게 앉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스님은 좌복 사이를 넘나들며 한 명 한 명 자세를 세심하게 교정했다. 놀랍게도 자세를 고쳐 앉을 때마다 뱃속 깊은 곳까지 숨이 들어차는 게 느껴졌다. 네 번째 단계인 혀의 위치까지 신경 쓰면서 호흡했을 때는 숨이 기도를 지나 몸통 전체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한 호흡에 삶과 죽음이 있습니다. 한 호흡이 들어가고 나오지 않으면 나는 사라집니다. 생과 사가 있는 호흡을 통해 무상을 봅니다. 들고 나는 호흡에 그저 무심히 집중하세요. 무상의 끝자락에서 내 안에 있는 부처님을 만납니다.”
명상의 시작을 알리는 싱잉볼 소리가 울리고 선방에는 오직 잠잠한 숨소리만 들렸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자세를 바르게 하니 숨이 코를 거쳐 뱃속까지 쑥 들어온다. 터진 콩 자루처럼 생각이 와르르 쏟아지다가도 이내 깊은 숨이 느껴지니 자연스레 호흡에 집중이 된다. 사방 천지 데굴데굴 굴러가던 생각들도 이내 다시 곧 고요해졌다. 다시 ‘뎅-’ 하고 울린 싱잉볼 소리에 시계를 보니 어느새 20분이 흘렀다. 눈을 감고 바른 자세로 앉아 호흡만 했을 뿐인데도 푹 자고 일어난 듯 머리는 맑고 몸이 개운했다. 두 시간의 수업을 마치고서 유난히 얼굴이 말갛게 빛나던 한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번 명상을 시도해 봤지만 오늘 처음 호흡에 집중하는 법을 제대로 알았어요. 처음에는 ‘자세가 불편한가?’ ‘다리가 저린가?’라고 생각했는데 숨 쉬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불편하지도 않고 아프지 않았어요. 마음도 되게 차분해지고 집중도 잘 된 것 같아요.” 스님은 자세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막상 해보면 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다독였다. “자세가 달라지면 호흡이 달라진다. 호흡에 잘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오만가지 번뇌망상이 떨어지게 된다. 숨 길이 트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우리가 기어다니다가 중력을 이겨내고서 일어나 걷는 것도 했는데 무엇을 못 하겠어요. 우리가 틈틈이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루 10분, 나를 위한 시간을 내봅시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 안에서 답을 구한다
첫날, 스님이 도량을 안내할 때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 우리는 약사전 뒤 명상쉼터에서 원효봉을 바라보며 각자 한 그루 나무처럼 서 있었다.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사느라 애썼다고 다독이며, 탁 트인 이곳에서 크게 숨 쉬어보며 내 안에 쌓여 있던 부스러기를 털어내 보자고 했다. 천천히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니 그동안 들리지 않던 새 소리가 무척 가까이서 들렸다. 봄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 따뜻했다.
“이런 고요함이 잠시 나를 편안하고 안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내 안의 나를 보지 못한다면 그 편안함은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내 안에서 답을 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밖에서 답을 구합니다.” 내 안의 나를 보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는다. 내 안에서 답을 찾으라는 스님의 말이 고요히 메아리쳤다. ‘하루 10분,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작은 숙제를 받아들고 일상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쪽빛 하늘 아래 둥글게 열린 해탈문으로 나서는 길. 미타전 풍경이 뎅-, 하고 맑게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