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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바람을 본다

글. 임택수 그림. 김상규

햇살이 은은한 종소리처럼 번지는 봄날이다.
완강했던 겨울의 침묵이 깨어지는 소리.

문득, 산사와 관련된 오래전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난생처음 절에 간 건 초등학교 육학년 봄 소풍 때였다.
천왕문 앞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달아나던 아이들과,
네 쌍둥이 같았던 사천왕의 모습을 멀찍이서 눈에 담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그해 나는 사생대회에서 큰 상을 받았는데,
내 그림이 남들과 다른 이유를 나중에야 알아차렸다.
봄 소풍 때 잠깐 보았던 단청을 못 잊어,
그림을 온통 바림채색 기법을 흉내 내어 그렸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이십 대가 되어 연인과 함께 찾았던 전남의 한 고찰. 그 시절, 불자가 아니었지만 나는 참배를 했다. 바른 생활을 하고 큰길로만 다니던 나는 너무도 당연히 법당 중앙 문으로 들어가 가장 크고 폭신해 보이는 방석을 골라 부처님을 마주 보며 삼배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법당을 나오니 한 스님께서 뒷짐을 진 채 나를 오래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고즈넉한 추녀 밑에서 맑은소리로 흔들리던 풍경만 떠오른다. 그때 무량수전 토방에 걸터앉아 풍경소리를 함께 듣던 옛 연인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봄꽃들이 산수유의 노랑에서 복사꽃의 분홍으로, 마침내 투명한 아까시나무의 하양으로 차례차례 피었다 지듯이 옛 연인의 부재도 마땅한 일처럼 느껴지는 봄날, 반죽 같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맨 처음 풍경을 단 이는 누구였을까.

누군가는 풍경을 풍탁(風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름인 풍령(風鈴)이 있고, 첨령(檐鈴), 첨마(檐馬), 금탁(金鐸) 등이 있다. 공통점은 모두 방울을 가리킨다. 경전에서는 탁(鐸), 령(鈴) 등으로 언급하였다. 일상적 의미에선 풍경이, 학술적 의미에선 풍탁이 친숙하게 쓰인다. 풍경의 몸체 아래 달린 물고기를 풍판(風板) 또는 꼬리 장식이라고 하는데, 추의 역할을 하는 연결쇠[鐸舌]가 바람에 잘 흔들릴 수 있도록 넓은 판을 댄 것이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물고기 모양은 조선시대 이후에 등장한 것이고 이전에는 나뭇잎이나 구름 모양을 주로 사용했다.


물고기를 상징으로 사용한 이야기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옛날 어느 절, 이름난 고승에게 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수행을 게을리하고 제멋대로 생활하다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었다. 그 제자는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는데, 등에서 자그마한 나무가 솟아나 점점 등을 짓누르는 격한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어느 날 노승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등에 큰 나무가 자란 물고기가 뱃전에 다가와 슬피 울었다. 노승이 물고기의 전생을 살펴보니 바로 게으름을 피우던 자기 제자였다. 물고기는 전생에 수행을 게을리한 자신을 참회하며 노승에게 해탈의 법문을 청했고, 노승은 제자를 가엾이 여겨 수륙천도재를 지내어 그를 물고기의 몸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제자의 부탁대로 나무를 베어 물고기 모양을 딴 목어(木魚)를 만들었다고 한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다. 밤낮 눈을 감지 않고 심지어 죽어서도 눈을 뜨고 있다. 그래서 수행자는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있으라고 불가에서는 물고기 형상의 불구를 만든 것일 테다. 나는 남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어학연수를 갔는데 계속 머무를 수 없는 형편이어서 한국으로 돌아와 몇 년간 일한 후 다시 그곳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프랑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학비가 들지 않아서였다. 석사 논문 심사를 앞두고 십팔 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 자신도 믿기 어렵다. 외국인 학생을 차별했던 한 교수가 아주 엄격한 심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나의 지도 교수가 내게 전했다.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예상 질문과 답안을 준비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심사를 사흘 앞두고 결국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쓰러졌고, 그날 이후부터는 세 시간씩 눈을 붙였다. 그때 세 들어 살았던 스튜디오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길쭉한 발코니 문에는 햇빛을 받은 쉬폰 커튼이 뿌옇게 하늘거리고, 문 위쪽에 달린 주물 풍경이 이따금 맑은소리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살짝 기울어진 물고기를 달고서.

풍탁의 청아한 소리는 부처님께 올리는 소리 공양이고, 수행자에게는 지혜의 증진을, 오가는 중생에게는 깨달음을 알아차리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한 마리 물고기를 허공에 매달자 푸른 하늘은 곧장 드넓은 바다가 되어 목조건물을 화재로부터 막아낼 수 있는 엄청난 양의 물을 상징하게 되었다. 드물게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입상과 같이 불상의 머리 위 보관(寶冠)의 네 모서리 끝에 풍탁을 달기도 했다.
풍탁의 형태를 살펴보면, 몸체인 탁신(鐸身)은 종형과 제형으로 구분한다. 종형에는 전통 범종형, 원통형 등이 있고, 전자의 경우 정면이 통일신라시대 범종과 같이 항아리를 거꾸로 엎어놓은 모습이다. 제형은 종형과 달리 오면체로, 밑면이 마름모꼴이나 방형(方形)으로 나타난다. 정면은 하부에 하나의 굴곡을 갖춘 사다리꼴이며, 옆 변이 직선 또는 배부른 형태로 떨어진다.

백제의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완형(完形)의 금동풍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다. 높이 14센티미터로 이 금동풍탁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 형태이며 풍탁의 전체적인 외형이 범종의 양식을 반영한 듯 몸체의 양면에 장식한 세로띠가 앞뒷면을 구분하고 상·하대와 방형의 연곽대(蓮廓帶)까지 연결되어 있다. 정상부에는 반원형의 고리를 부착하고 어깨 부분에는 한쪽 면에 두 개씩 유곽(乳廓)이 있고, 유곽 안에는 다섯 개씩 작은 돌기(蓮蕾)가 표현되어 있다. 이 풍탁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탁신(몸체) 전·후면에 장식된 연꽃 모양의 당좌이다. 당좌란 종을 칠 때 때리는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풍탁의 용도상 아무 필요 없는 당좌를 장식하고 있는 점은 당시 범종의 형태를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기록지인 『영가지(永嘉誌)』의 「고적루문고종조(古蹟樓門古鍾條)」를 보면 세조 임금 때 상원사 중창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범종을 구하던 중 안동 관아의 누문(樓門)에 걸려 있던 옛 종이 선정되어 상원사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당좌는 여덟 판 연화문으로 표현되어 금동풍탁과 흡사해 보인다. 상원사의 종은 하단 부분이 일자형인데, 금동풍탁은 중국의 종처럼 굴곡형이다. 통일신라시대로 오면서 제형 풍탁이 등장했다. 평면 형태가 사각형, 원형, 마름모꼴 등으로 다양화되고, 표면에는 종과 같은 문양이 있는 것과 문양이 없는 것 등 삼국시대에 비해 다양해진 모습을 담고 있다.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는 제형 풍탁이 보편화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나말여초기 이후부터 제형 풍탁의 제작이 증가한 것은 당시 제형 풍탁을 많이 사용하던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원형과 마름모형, 육각형의 평면 형태. 이전과는 달리 표면에는 입상연판문대, 불문(黻文), 삼환문, 삼원문, 불보살상문, 범자문, 동물문 등 여러 의장을 제약 없이 표현하였다. 이 시기의 풍탁은 불교의 상징성을 뚜렷이 드러내 보였다. 연결쇠인 탁설(鐸舌) 하부에 별도의 장치인 치게를 추가해 제형 풍탁의 몸체 네 면에 골고루 부딪혀 소리를 내게 한 것도 섬세한 장인 정신을 반영한 것일 테다. 이러한 치게는 주로 열십자 형이 많다. 조선시대의 풍탁은 고려시대보다 한층 단순해져 사각형과 일반적인 종의 모습, 종의 형태에서 변형된 나팔형 등이 있다.

풍탁 소리는 부처의 말씀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 쓰여 있다. 풍탁이 있는 곳이라면 부처의 가르침이 존재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리하여 일체의 제약을 벗어난 물고기의 자유로움을 사찰 전각 처마 끝이나 석탑의 옥개석 끝자락에 매달았을 것이다.

햇살이나 종소리는 손에 넣거나 붙잡을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데우고 풍경 소리에 잠시 귀를 열고서 눈을 감는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풍경 소리의 길은 천 갈래, 만 갈래일 것이다. 물오른 나무들도 자유롭게 공중에 길을 만든다. 상처 입은 나무는 자가치유력을 발동한다. 스스로 새로운 유합조직을 만든다. 나무의 가장 단단한 자리는 상처가 회복된 그 자리이다. 나를 떠난 사람도 내가 떠나온 사람도 모두 풍경의 여백과 다름없다. 상처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흉터를 남긴다. 그럼에도 생기 가득한 햇살이 부드럽게 흉터를 만져주는 계절이다.

 임택수 전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템플스테이 팀장. 2024년 단편소설 「오랜 날 오랜 밤」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데 이어 장편소설 『김섬과 박혜람』으로 제20회 세계문학상을 동시 수상하며 등단했다. 여러 가지에 애착하지만, 영원히 내 것은 아니라고 고두하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김상규 조계종 포교원 불교 크리에이터 4기.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저서로 『까만 별』 『빛과 바람의 그림, 고려불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