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그 새벽에 나는 처음 간 절의 낯선 법당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있었다. 처음 가본 지역, 처음 들어본 지명 속의 장소. 그런 곳에 그런 절이 있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거기에 있었다. 바닥에 몸통을 던지고 있었다.
전날 아침에 나는 인파가 만두소처럼 한없이 들어차는 출근 시간대의 전철을 타고, 또 탔다. 내릴 역에 가까워질수록 칸이 언제 그토록 미어터졌었나 싶게 부쩍 한산해졌다. 역에 도착했을 때 빌딩과 아파트 단지는 이제 보이지 않았고 황톳빛 바람 사이로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정류장에 대기 중인 택시를 탔다. 그곳의 이름을 말하자 기사님은 되물어오셨다. 한 번 더 알려드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잠시 보여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 내가 켜 둔 지도 앱 속의 주소를 가만히 보시고는 당신의 핸들 옆에 나의 핸드폰을 단단히 거치하셨다. 마치 운동화 끈을 질끈 묶듯이.
기사님은 불자셨다. 대시보드를 덮고 있는 새까만 스웨이드를 들추자 그 아래에 황금색 표지의 『금강경』 사경본들이 보물처럼 드러났다. 선바이저에는 사경할 때 쓰신다는 펜 여러 자루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룸미러에는 ‘만卍’자 장식이 대롱거리고 있었다. 기사님은 어쩐지 조금 신이 나신 눈치다. 나는 이미 전철에서 기력을 꽤 소진한 상태였지만 기사님에게만큼은 최선의 말동무가 되고 싶었다. 내가 가려는 곳이 이분 없이는, 이분의 호의 없이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일 거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언 발로 공양미를 이고 지고 절 다니셨다는 어린 시절 이야기, 폐암 투병기, 기적 같은 완치기, 근래의 신행 생활 이야기, 기나긴 그 이야기들이 골짜기를 이루며 구불구불 이어졌다. 그럼에도 도착은 아직 먼 듯하였다. 창밖은 점점 더 푸르러졌고 도로 폭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자욱한 습기에 싸인 밤나무 그늘은 택시가 달리는 곳이 어디쯤인지 더욱 가늠할 수 없게 하였다. 나는 기사님이 불자인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가 이 도무지 속력을 낼 수 없는 거칠고도 생경한 곳으로의 긴 운행을 좀체 꺼리거나 지루해하지 않는 이야기꾼이라는 것도. 비탈길이 점점 가파르다. 이윽고 절이 보인다. 길의 끝이다.
길의 끝. 우리는 노르웨이 최북단이자 유럽 대륙의 최북단이기도 한 노르카프로 가고 있었다. 트롬쇠로부터 600여 킬로미터. 가을로 접어들던 노르웨이의 숲은 요정의 노랫소리처럼 신비로웠고 눈 닿는 곳곳에 그들의 악보처럼 펼쳐지던 무지개들 또한 황홀했지만, 어느 지점에서부터인가 사방이 황무지다. 바깥은 오로지 흐릿한 하늘과 돌들의 정적. 어딘지 밀려드는 긴장감을 녹이기 위한 잡담이 차 안에 맴돌지만 끝내 공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밝은 음악도 더는 어울리지 않는다.
첫날에 우리는 비를 흠씬 맞고 돌아왔다.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아랫마을에 숙소를 잡아두었고 둘째 날에는 날씨가 괜찮았다. 북단을 여행하기에는 비수기인데도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주차장에서는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확인하고 기록하였다. 땅끝 절벽 위에 카페와 기념품점, 작은 상영관과 예배당이 딸린 박물관이 한 동 있다.
하지만 그곳의 주인은 바람이다. 모든 것을 빠른 속도로 날려 보내고, 저 자신까지도 날아가 버리는 바람이다.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곳을 한 국가의 관광자원으로 기능하게 하는 수많은 요소, 요컨대 주차장의 시스템이나 박물관의 구성, 비싸고 차가운 핫도그, 못생긴 열쇠고리, 관광객들, 그리고 관광객으로서 우리가 지니는 행동 양식과 시선들까지도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벼랑 끝에 멈춰 선다. 절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바다는 다만 바다일 따름이었고 아무런 표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몸의 여린 부분들은 돛처럼 끊임없이 펄럭이고 있었다. 끊임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떨어져 나가며. 깎여가며. 세상이 차츰 평평해지고 있었다. 허공도 바닥도, 저 먼 곳도 가까움도, 삶과 죽음마저도 더없이 평평해지고 있었다. 나는 절벽의 일부였다. 땅의 일부이자, 누워 자라는 풀 무더기의 일부였다. 언젠가 그곳에 죽어 말라붙은 양의 일부였다. 모든, 흩날려왔으며 흩날리고 흩날릴 것들. 그것의 바탕이 어찌나 평평하던지. 불현듯 두려움도 날아갔었나.
노르웨이에서는 숲도 보았고 무지개도 보았다. 순록과 오로라도 보았다. 그러나 내가 이전까지는 미처 사진으로도 꿈으로도 보지 못한 것, 진정 처음 보았던 것은 오직 단 하나, 세상의 평평함이었다. 그 평평함이 주는 평온이었다.
절에 도착하자, 이곳에서는 나오는 교통편을 구할 수가 없으니 필요할 때 전화를 달라며 기사님께서 명함을 주셨다. 외딴곳 절 마당에 대뜸 달려와 숨을 고르는 택시 곁으로 노스님 한 분이 다가오셨고 나는 용건을 말한 뒤 안내를 받았다. 선배 스님에게 노르웨이에서 가져온 과자와 원두 따위를 건네려고 나는 이 절에 왔다. 선배 스님을 마지막으로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그간은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도통 말해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촐한 우편이나마 기어코 보낼 요량으로 실랑이 끝에 거처를 알아낸 것이다. 직접 올 생각은 없었다. 직접 오기 전까지는. 나조차도 갑작스러운 결심이었다.
3년 만에 만난 스님은 여전했다. 우리는 그렇듯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동산을 오래 걸었다. 스님도 내게 여전하다 하였다. 나는 조금 변했다. 그렇지만 스님을 만나면 내가 누구인지 다시금 기억하게 되는 게 아닐까. 문득 멈춰 서는 게 아닐까. 돌아가는 게 아닐까. 나는 스님에게 과자와 원두 따위를 건넸고 스님은 내게 목장갑을 건넸다. 그리고는 오체투지 하는 요령을 일러주었다. 스님의 기도 시간에 나는 뒤에서 내내 오체투지를 하였다. 그 오후에도. 다음 새벽에도.
나는 땅이었나. 누워 자라는 풀 무더기였나. 양 떼가 죽고, 꽃대가 자라는. 그 끝은 가파른 절벽이었나. 비가 퍼붓고, 빛이 쏟아지는. 가쁜 바람에, 그로부터 몰아치는 파고에 날카롭게 벼려지다가 다시 우수수 허물어지는. 무르고도 단단하게 오래도록 이어져 온 운동. 박동. 그 광경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차츰 평평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