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숲, 믿음의 길
영월 법흥사
열반을 앞두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모르는 게 있다면 지금 물어라.”
제자들은 침묵했다. 부처님이 거듭 말씀하셨으나 침묵은 계속되었다.
아난다가 입을 열었다. “이 대중은 궁금한 것이 없습니다.” 제자들은 묻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럴 필요가 없을 뿐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모두 알게 되었는데, 무엇을 따로 묻겠는가. 불멸佛滅 후 다비식이 열렸다.
부처님 육신이 불꽃과 함께 흩어지고 사리가 남았다. 사리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 곳곳으로, 여기 강원도 영월 사자산에까지 이운되었다. 수천 년간
숱한 믿음이 향하였던 진신사리. 오늘, 여전히 모르는 우둔한 순례자가
사자산에 들었다. 사리를 참배하기 전 묻는다. 믿음은 무엇일까.
해발 1,180미터 사자산 비탈은 온통 소나무다. 하늘마저 거뭇하게 보일 만큼 무성한 숲, 고요한 길을 따라 법흥사로 걸음을 옮긴다. 나무 사이를 비집고 떨어진 햇살이 빛의 춤사위를 펼쳐 땅에 내려앉는다.
문득 바람이 분다. 갈기처럼 늘어진 솔숲 가지들이 바람결에 솨솨 소리를 낸다. 오후 단잠을 즐기던 사자산이 기지개를 켜는 듯 가지들이 내리 흔들린다. 순례자를 맞이하는 빛과 나무의 군무가 오래 이어진다. 솔 향기 묻은 바람을 들이마신다. 가슴에서부터 온몸으로 청정한 자연이 번진다. 닦지 않아도 이렇게 절로 맑은 마음 드러나니, 굳이 드러내 보려 버둥거린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나. 말이 없는 사자산은 그저 따사롭다.
일주문과 원음루를 지나 극락전 앞마당에 섰다. 아직도 솔숲은 사방을 에워싼 채 물러나지 않는다. 소나무가 덮은 사자산이 간신히 제 능선을 내비친다. 하늘 아래에서 산의 만곡이 강물인 양 흐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저 아름다운 산 어디에 진신사리가 있다. 아득한 옛날,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셔 온 이곳에 오늘 우리는 닿았다. 감사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힌다.
내 안으로, 진신사리를 향해
590년 신라에서 태어난 자장은 일찍이 불법에 뜻을 두었다. 중신이 되라는 왕명을 거스르고 출가했으며, 불법을 깨치겠다는 일념으로 중국 당나라에 유학했다. 그는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중 신묘한 경험을 한다. 꿈에 문수보살이 나와 산스크리트어 게송을 들려준 것이다. 언어가 다른 탓에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자장에게 다음날 노승이 찾아온다. “사구게는 이러하다. 모든 것의 실상을 깨치면, 참된 나는 무소유라는 것을 알지니,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즉시 노사나불을 보리라.” 사구게를 해석해 준 노승은 진신사리를 건네고 사라졌다.
믿음은 어디에서나
법흥사 적멸보궁엔 불상이 없다. 불상을 모셔야 할 곳에 통유리를 내 전각 뒤편 언덕을 올려다보게 했다. 자장은 저 언덕에 진신사리를 묻었다고 전한다. 어디일까, 지금도 있을까, 정말 묻은 걸까.
적멸보궁
법흥사는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에 창건했다. 당시 이름은 흥녕사였다. 이후 886년 징효대사澄曉大師가 이곳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열었고, 한때 선객 수천 명이 모여 정진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흥녕사는 폐허가 되기도 했으나, 고려 초기에 호족의 지원에 힘입어 중창되었다. 조선시대에 역시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다 끝내 적멸보궁만 남은 채 유지되던 흥녕사를, 1902년 대원각 스님이 법흥사로 개칭하여 재건했다. 1912년 또 한 차례 화재로 소실된 뒤 현재 자리로 적멸보궁을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법흥사 적멸보궁은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묻었다는 사자산을 바라보고 있다.
석분과 부도
적멸보궁 뒤편에 자리한 영월 법흥사 석분石墳은 사자산에 진신사리를 봉안한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곳이라고 알려졌다. 얼핏 봉분으로 보이는 토굴의 입구는 네모 모양이며, 내부는 바닥이 평평하고 벽면이 둥그스름하다. 가로 1미터 60센티미터에 높이 1미터 90센티미터의 좁은 내부에서 자장율사가 주위에 가시덤불을 두르고 정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인 영월 법흥사 부도가 석분 옆을 지키고 있다. 누구의 부도인지는 알 수 없으며, 다만 사리탑으로 불린다. 불법을 지키는 신장과 연꽃을 조각한 부도가 석분과 함께 경건한 분위기를 더해준다.
소나무 숲
적멸보궁뿐 아니라 소나무 숲을 뺀다면 법흥사를 제대로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 법흥사 가는 길에 빼곡한 소나무 숲은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 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에 왕실이 사용할 소나무를 보호하고자 일반인 벌채를 금지하는 황장금표를 세울 정도로 이곳 소나무는 귀하게 여겨졌다. 계곡과 소나무가 빚은 신선의 경치는 현재도 마찬가지로 감탄을 자아낸다. 법흥사 주차장에서부터 적멸보궁에 이르기까지 최대 높이 25미터 소나무들이 도열한 장관 속을 걷는 기분은 그야말로 황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