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흰 겨울 산 부처님의 자리
정선 함백산 정암사
산사를 찾는 발걸음마다 도시 생활에서 쌓인 번뇌가 한 꺼풀씩 벗겨지듯 청량감이 감돈다. 아직 겨울이라기엔 이른 만추. 대지가 한껏 가을 색을 뽐내는 시간에 함백산 정암사를 찾는다. 그 어떤 산중 사찰보다 더 깊은 산중에 자리한 정암사로 향하는 길은, 비록 예전처럼 두 발로 걷지 않고 네 바퀴 자동차로 빠르게 달려가더라도 여전히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영월읍을 지나 고한 읍내까지 내내 이어지던 낙엽송 샛노란 단풍잎이 정암사 산문에 다다르자 언제 잎을 달고 있었냐는 듯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을이 아니라 겨울 산사에 들어선 것이라고 숲의 말 없는 말이 이어진다. 해발 800미터가 훌쩍 넘는 높고 깊은 산, 그곳의 겨울은 다른 어떤 곳보다 일찍 시작되고 있었다.
끊임없는 변화와 서로의 관계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하며 생하고 멸한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 관계한다. 적멸보궁의 성지로서 깊은 산속에 아담하게 자리한 정암사는 ‘고요가 변하지 않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조차 욕심임을, 정암사를 둘러싼 거대한 숲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준다.
‘숲과 골짜기가 해를 가려 속세와 단절된 깨끗하고 고요한’ 정암사는 함백산咸白山 북사면 깊은 계곡에 자리하고 있다. 동과 서, 남쪽에 급한 경사의 산줄기로 둘러싸여 겨울에는 특히나 해가 가려진다. 부처님이 항상 머물고 계시는 적멸보궁으로 이보다 더 고요한 불토佛土가 어디 있을까.
신라 자장율사께서 645년 이곳에 정암사를 창건한 이래, 그 어느 곳보다 겨울이 긺에도 부처님의 온기로 1,400년을 한결같이 이어오고 있다.
산문을 알리려는 듯 곧게 솟은 전나무숲을 지나고 마주하는 일주문과 범종루를 지나 관음전에 들어선다. 관음전 앞마당, 이미 모든 잎을 떨군 겨울나무 가지 위에서 반대로 파란 잎을 뽐내며 시선을 잡아당기는 겨우살이는 이 숲이 간직한 세월의 굴곡을 누군가에게 안내하려는 듯하다. 계곡을 따라 산을 올라 수마노탑에 이르면 속세를 떠나 고요한 숲을 찾아가 마음속 번뇌를 씻어내고자 했던 자장율사의 신심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겨울은 숲의 내면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형형색색 화려한 나뭇잎들의 치장에 눈을 빼앗기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 정암사의 숲도 그러했다. 멀리서 찾아온 객은 단지 순간에 머물 뿐이지만, 오랜 시간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새겨진 정암사 숲을 들여다보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숲은 밖에서는 움직임 없이 고요하게만 보이지만, 숲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 안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굴곡의 역사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먼 옛날, 불국토를 애써 찾는 이가 아니라면 닿기 힘든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인 첩첩산중에 정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정암사를 둘러싼 숲은 마치 천 년 전에도 지금도 언제나 변하지 않고 그대로일 것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마음은 숲에 들어서는 순간 빠르게 흩어지고 만다. 곳곳에 할퀴고 찢긴 흔적이 남아 있는 숲을 마주하노라면 다시 한번 ‘변하지 않음’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음 한편에 품었던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다시 회복의 시간
주지 천웅 스님께서 앞장서 안내하는 숲의 초입에는 최근까지 숲이 겪었던 깊은 상흔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근현대 수십 년간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을 책임졌던 연탄을 채굴하느라 만들어진 흔적들이다. 이제 그 기능을 다한 탄광과 주변은 캐다 만 탄재를 가리려 흙으로 두텁게 덮었다. 그 위로 새로운 숲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아까시나무가 빠르게 숲을 만들어가고 있다. 다시 조금의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함백산이 간직했던 숲의 모습을 빠르게 되찾을 것이다.
정암사 숲은 근현대 질곡의 역사가 담겨 있다. 인가가 드문 깊은 산에 위치한 까닭에 일제강점기의 수탈도, 한국전쟁의 포화도 모두 비껴갔다. 그러나 드넓은 숲이 온전히 보존되었던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화석연료로 전환되는 시점에, 즉 전국적으로 나무 땔감을 채취해서 생기는 숲의 파괴가 멈추고 숲이 회복되는 시점에 도리어 상처를 입고 만다.
나무 땔감을 대체하기 위한 탄광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60년대부터 정암사 숲 곳곳이 파헤쳐지기 시작했다. 석탄을 파내면 파낼수록 더 깊고 더 길게 이어지는 갱도를 지탱하기 위해 주변의 나무들이 베어졌다. 숲 회복의 전환점이었던 화석연료의 사용이, 정암사 숲에는 손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는 석탄 채굴도 끝이 나 숲은 다시 회복의 시간으로 접어들었다.
어린 아까시나무 숲을 지나면서 겨울 함백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낙엽이 소복하게 쌓인 참나무 숲길을 오르는 스님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고,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숲과 함께하는 스님의 마음이 숲에 그대로 전달된 것인지, 젊음으로 충만한 참나무숲의 기운이 스님께 스며든 것인지, 스님과 숲의 모습이 참으로 닮았다.
함께 걷는 숲길은 지금은 졸참나무와 신갈나무가 경쟁하는 참나무숲이지만, 그 사이로 겨울 숲의 터줏대감인 박달나무와 거제수나무들이 다시 올 미래 숲의 주인답게 하늘로 힘차게 뻗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마주할 수 없겠지만, 다음 세대는 긴 겨울이 만드는 함백산의 온전한 숲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안식처가 되는 온전한 숲
함백산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차량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다. 고한에서 만항재를 넘는 414번 지방도는 해발 1,286미터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어 겨울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을 덜어준다. 함백산에서 북으로 뻗은 은대봉을 따라 걷는 능선길은, 그래서 정암사가 간직한 겨울의 숲을 더 온전히 집중하게 만든다.
탄을 캐서 운반하던 흔적들이 어지러이 놓인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랜 겨울의 삭풍을 고스란히 담은 숲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긴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이겨낸 거대한 겨울나무 숲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신갈나무 숲의 노거수들은 마치 1,400년 전, 자장율사가 이 숲을 찾아올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모든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또 앞으로 1,000년 후에도 이 자리에서 먼 미래에 있을 흔적들을 담아낼 것처럼 굳건히 서 있다.
신갈나무 숲을 뒤로하니 한겨울 설산에서 눈에 띄지 않으려 보호색으로 위장한 듯한 사스래나무 숲이 펼쳐진다. 눈이 내리지 않은 겨울 초입에는 그 색이 더욱 두드러지기에, 눈이 없는 겨울 산에서는 되레 시선을 사로잡는다. 눈이 쌓여도 혹은 눈이 없어도 겨울 산은 그렇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다.
소멸의 다른 말은 다른 무언가의 나타남이다. 멈추면 비로소 움직이는 것들이 보인다. 오랜 세월 인간의 생산 활동이 이어지던 정암사 숲. 이제 그 활동이 멈춘 곳에서 자연의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된다. 오랜 시간 우리에게 많은 물질을 베풀었던 정암사 숲은 이제 눈에 보이는 물질을 대신해 보이지 않는 ‘쉼’이라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천웅 스님의 말씀에 담긴 정암사 숲의 미래는 다시 과거로 거듭난다. 먼 옛날, 자장율사의 혜안으로 밝힌 부처님의 자리로서. “주민은 주민대로, 수행자는 수행자대로 정암사를 찾는 누구나 안식처가 되는 온전한 숲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