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사랑하는 법
양주 회암사 ‘내려놓기, 진정한 나와의 만남’ 템플스테이
당신은 자기를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다그침 없이 위로하고, 아낌없이 응원해 본 적 있는가.
모두가 ‘힐링’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을 사랑하는 법은 배운 적도 연습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양주 회암사 선명상 템플스테이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전한다. 걷기 명상과 호흡, 싱잉볼의 파동, 차 한 잔의 온기까지. 함께
깊게 호흡하며 선명하게 느끼는, 나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시대가 바뀌어도 마음을 머물게 하는 공간
회암사로 향하는 길은 광활하다. 천보산天寶山 중턱으로 들어서자 ‘하늘이 내린 보배’라는 산 이름에 걸맞게 크게 열린 하늘과 햇살로 충만한 너른 터가 방문객을 먼저 맞이한다. 겹겹이 쌓였다 흩어진 시간의 켜가 고요히 남은 자리. 이 넓은 땅이 옛 절터인 회암사지다.
일어나고 사라짐을 몸소 보여주는 이 대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잠시 쓸쓸했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고요해진다.
회암사는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대로 금나라 사신이 참배한 12세기부터 지공 스님과 나옹 스님이 선맥禪脈을 펼치던 고려 말을 거친 후 태조 이성계를 비롯한 조선 왕실이 행차하던 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간이다.
한때 266칸, 3,000여 명의 스님이 머물렀던 웅장한 전각은 세월 속에 사라졌지만 터가 품은 고요함과 깊이는 변함이 없다. 사람을 부드럽게 멈춰 세우고, 말없이 마음을 내려놓게 만드는 곳. 많은 이가 “회암사는 들어서는 순간 설명할 수 없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햇살이 비치는 자리마다 오래전부터 쌓인 따뜻한 발원들이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듯하다.
옛 절터를 지나 숲길을 따라 10여 분, 차분히 호흡을 고르며 산길을 걸어 올라가면 비로소 ‘지금의 회암사’에 닿는다. 1821년 중수된 이곳은 3대 화상인 인도의 스님 지공선사指空禪師, 고려말 공민왕의 스승 나옹선사懶翁禪師,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스승 무학대사無學大師의 부도와 비가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광활한 풍경, 쌓였다 흩어진 시간, 오래된 발원들이 고요히 만나는 장소. 마음을 내려놓게 만드는 그 고요한 터 위에서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 템플스테이의 하루가 시작된다.
몸이 풀리고 마음이 따라오는 경험
“마음이 평온하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한 상태는요. 가슴 속 하트, 심장이 선홍빛 젤리처럼 말랑말랑해요. 지금은 100세 시대죠.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흡을 잘해야 합니다.”
호흡 명상부터 싱잉볼 명상, 걷기 명상, 차 명상, 스님과의 차담까지 ‘나’를 깊이 마주하는 시간으로 알차게 채워져 있다. 따뜻한 미소로 참여자들을 맞이한 지도법사 의천 스님은 첫 만남부터 호흡을 안내했다. 스님의 풍부한 표현과 친근한 설명에 참여자들은 금세 긴장을 풀고 마음을 연다.
“회암사의 신선한 공기를 가득히 들이마시고, 내뱉을 때는 나를 힘들게 했던 고민을 함께 뱉어 버리세요. 천천히 내쉬는 호흡에 고민도 내려놓으세요.”
그 한마디에 숨이 저절로 뱃속 깊숙이 들어간다. 스님은 1박 2일 동안 어떤 명상을 하든 반드시 한 번씩 호흡을 상기시켰다. 모든 명상의 시작이 호흡이기 때문이다. 도량 안내를 받으며 회암사 경내를 걸을 때도, 멈춰 서서 풍경을 바라볼 때도 스님은 가볍게 말한다.
“지금 숨이 어떻게 들어가고 있는지 한 번 느껴보세요.”
호흡을 고르고 걸음을 살피니 ‘걷기 명상’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아차림이 일어난다. 올라올 때는 듣지 못했던 새소리가 들렸다. 바삭한 낙엽이 밟히고, 발바닥이 땅과 맞닿는 감각이 또렷해진다. 10분의 길이 순식간처럼 흘러간다. 흔적만 남은 주춧돌에 둘러앉아 툭 터진 하늘을 천장 삼아 잠시 좌선하자, 템플스테이에 오기 전 마음을 짓누르던 생각들이 어느새 과거가 되어 멀어진다.
“손목에 힘을 빼야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어요. 치료를 받을 때도 ‘힘 빼세요’ 하지요. 힘을 빼는 것이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완을 잘하는 사람들이 결국 창의력도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잘하려고 애쓰며 늘 힘이 들어가 있어요. 힘을 주면 몸은 굳습니다. 경직되면 마음도 편안해질 수 없지요. 힘을 빼야 이완이 됩니다.”
이어진 싱잉볼 명상 시간. 한 참여자의 “싱잉볼이 어떻게 명상이 되나요?”라는 질문에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싱잉볼의 울림에 귀를 기울이면 소리 파동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해진다. 맑은 진동에 몸을 맡겨 서서히 긴장을 녹이다 보면 마음도 어느새 함께 말랑해진다. 자애심을 발동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도 이완이다. 진짜 명상에 들어가기 전 단계다.
참가자들은 좌복 위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스님이 연주하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박다영 씨(28, 경기)는 싱잉볼 소리가 주는 편안함에 곤히 잠이 들었을 정도다. “불이 꺼지고 누워서 싱잉볼 소리를 듣는데 저도 모르게 아주 짧은 순간 깊이 잠들었어요. 소리가 온몸을 감싸듯 미세하게 퍼지는 것 같았어요. 앞서 스님이 싱잉볼 소리가 신체 부위마다 어떻게 작용한다는 걸 알려주셔서 더 좋았어요.”
누군가가 내 마음을 분석해 주지 않아도, 억지로 치유하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몸이 편안해지자 마음이 따라서 풀어지는 경험. 참가자들의 표정에는 눈에 띌 듯 말 듯 느슨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나를 먼저 사랑할 수 있을 때
이튿날 아침부터 이어진 차 명상 시간, 스님은 “오늘 이 차를 누구에게 대접하고 싶은지”를 물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참가자들은 처음으로 ‘나에게’ 차를 대접하는 경험을 했다.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 참가자들은 ‘나에게 잘 대해 준다’는 감각을 또렷하게 느꼈다.
의천 스님은 모든 시간 동안 수행법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안내했다. 그리고 어떤 명상을 하든 마지막에는 늘 똑같은 문장을 덧붙였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호흡마다 나의 모든 사랑하는 마음을 내 모든 세포에 전달하세요.”
이틀간의 프로그램이 향하는 방향은 명확했다. 선명상을 경험하며 휴식이나 치유를 넘어, ‘나를 사랑하는 법’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무량심四無量心. 즉 자비희사慈悲喜捨 중 가장 처음이 ‘자慈’입니다. 자애심.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떤 사랑도 시작되지 않아요. 자비희사를 모두 함께 공부하기엔 짧은 시간이니 첫 번째 키워드인 ‘자’부터 실천해 보는 거예요.”
자애는 자기중심적 애착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힘이라고 스님은 말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확신과 스스로를 용서하는 여유가 생길 때, 비로소 타인을 위한 사랑도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고 했다. “미소가 첫 단계입니다. 기쁨과 행복을 나에게 먼저 보내야 해요.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마음을 쓰게 됩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해야 해요. 선한 일을 하면 마음이 기쁩니다. 그 기쁨이 쌓이면 나의 하루하루가 달라져요.”
나에게 머무는 시간으로 시작해 나를 사랑하는 과정을 거쳐 바깥을 향한 자비로 퍼져나가는 한 획의 흐름, 자애의 확장. 숨을 깊이 들이마시는 순간 얼굴에 떠오른 미소 하나가 결국은 세상을 향한 따뜻함으로 번진다.
이틀의 여정을 마치고 산길을 따라 일상으로 내려가는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저절로 머금어진 미소가 감돌았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회암사지 노을빛처럼 고요히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