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의 터널을 거쳐 얻은
고즈넉한 치유의 시간
유창선·김경숙 부부의 제주 관음사 템플스테이
글. 유창선 사진. 하지권
템플스테이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여행을 다니면서 전국에 있는 사찰들을 자주 다니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봐야 잘 알려진 사찰을 구경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사찰을 구석구석 들여다보거나 법당 안에 들어가서 절을 올리지도 않던 나였다.
올해부터 시작한 템플스테이 순례
그랬던 내가 올해에는 여러 사찰의 템플스테이에 다녀왔다. 지리산 천은사를 시작으로 속리산 법주사, 순천 송광사 템플스테이에 갔다. 그리고 11월 14일에 제주 관음사 템플스테이에 다녀왔으니 한 해 동안 네 차례나 템플스테이를 간 것이다.
왜 갑자기 템플스테이를 자주 다니게 된 것일까? 나는 지난 2019년 2월에 갑작스럽게 뇌종양 수술을 했다. 생사를 가르는 큰 수술이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되어 종양은 100% 제거됐다. 하지만 엄청난 후유증들로 폭탄 맞은 것 같은 몸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오랜 시간 투병과 재활의 터널을 거쳐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인생관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었다. 나 또한 생의 유한함을 깨달았기에 남은 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죽다가 살아난 두 번째 삶은 세상의 증오와 싸움, 시기와 질투 같은 것들과는 거리를 둔 채 평온하고 고즈넉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예순이 넘은 늦은 나이에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데 빠져들었다. 문화예술로부터 위로를 얻고 치유를 받았다. 템플스테이 경험을 하고자 했던 것도 그 연장선에 있는 일이었다. 고즈넉한 사찰 안에서 지내며 부처님의 자비로운 기운을 받아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물론 지금은 몸이 많이 회복되었으니 이렇게 템플스테이를 하려고 여러 사찰을 다닌다. 하지만 내 건강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건강을 돌보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살아갈 힘을 얻는 일이 내게는 절실하다.
그런 나였기에, 템플스테이들은 가는 곳마다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감흥을 주곤 했다. 깊은 산을 끼고 있는 사찰이 주는 깊은 느낌이 우선 좋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풍광과 함께하는 템플스테이는 도시에서 분주하게 생활하고 일하던 내게 소중한 자기 돌봄의 시간을 주었다. 가는 사찰마다 고유의 색깔이 있는 것도 템플스테이의 매력이다.
템플스테이를 가면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을 올리곤 한다. 그때 비는 가장 큰 소원은 건강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어디서였던가, 절을 올리다가 불상에 있는 부처님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불상이야 사람이 만든 것이겠지만, 참으로 부처님의 얼굴이 인자하게 보였다. 부처님은 어떤 소원이든 다 들어주실 것만 같았다.
나는 사찰에 가면 약사전이 있으면 꼭 들어가서 절을 올리곤 한다. 약사전은 병들어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약사여래를 모신 곳이다. 물론 의학적으로야 부처님에게 기도를 한다고 해서 몸이 낫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대웅전이나 약사전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면 어쩐지 몸이 좋아질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아마도 사찰이 내 마음에 주는 치유의 힘일 것이다.
치유의 섬 제주로 템플스테이를 가고 싶었다
올해의 마지막 템플스테이는 제주에 있는 관음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륙의 큰 산을 끼고 있는 사찰들만 다녔는데,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의 템플스테이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만 같았다. 사실 5년여 전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로 제주에는 정말 많이 다녔다. 좋은 풍광 속에서 몸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제주에서 한 달 살기’도 했고, 시간만 되면 제주에 가서 올레길을 많이 걷곤 했다. 아팠던 내게 제주는 치유의 섬이었다.
나는 서울에 살기에 관음사 가는 길은 김포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먼 길이기는 하다. 그러나 관음사가 한라산 기슭, 그것도 한라산 탐방로 입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우리 부부는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일찍 도착하여 렌터카를 운전하여 미리 예약해 놓은 관음사 탐방로로 갔다. 관음사 템플스테이에 들어갈 때까지는 몇 시간이 남으니, 그 사이에 한라산을 조금 오르고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템플스테이에 지장을 주지 않을 만큼 쉬운 길까지만 오르고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서 관음사에 도착했다. 템플스테이를 전후하여 한라산 길도 오를 수 있으니 이야말로 관음사 템플스테이만이 줄 수 있는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음사에 도착해서 일주문에 들어서면 정말 멋진 길이 눈에 들어온다. 천왕문까지 가는 이 길은 워낙 이색적이고 아름다워서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촬영 장소가 된 곳이다. 종무소에 가서 보살님의 안내로 방사에 짐을 풀고 템플스테이 옷으로 갈아입었다. 10월 하순에 갔던 송광사 때까지만 해도 여름 반팔옷을 입었는데 11월이 되었으니 두터운 겨울옷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보살님의 안내를 받으며 관음사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마침 수능 날이라 대웅전에서는 하루 종일 수험생 학부모들이 와서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이제 수험생이 없지만, 대웅전에 들어가 잠시 절을 올리고 나왔다. 나는 사찰에 가면 약사전에 들어가서 건강을 빌곤 하는데, 관음사에는 약사전은 따로 없고 삼성각 안에 삼신, 칠성, 독성을 함께 모시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부처님도 삼성각 안에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절을 올렸다. 거대한 미륵대불과 그 뒤에 있는 수많은 석불들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뒤 편에 있는 산과 숲의 갈대들이 늦가을 사찰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관음사 역사의 산증인인 보살님의 설명으로 알게 된 것은, 관음사는 비구니 해월 스님이 1909년에 복원함으로써 조선 후기 200년간 끊어졌던 제주 불교가 비로소 재건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해월당 봉려관 스님 행적비>와 석상을 보며 그 뜻을 기릴 수 있었다. 해월당 스님이 4년여 동안 기도정진 하셨다는 해월굴에도 들어가 보았다.
소박하고 편안했던 느낌의 관음사
짧은 시간 둘러보았지만, 관음사가 주는 느낌은 소박함과 편안함이었다. 큰 사찰들이 주는 웅장함과는 달리, 크게 넓지도 않고 법당들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왜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관음사 고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리고 제주라는 관광지에 있는 사찰이라서 그런지, 누구나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가 읽혀졌다. 평소 오랜 역사를 가진 큰 사찰들의 웅장함에 감탄하곤 했지만, 이런 고유의 색깔을 지난 관음사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맥락에서 무척 좋았다.
다음 날 아침 ‘스님과의 차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가 간 날은 템플스테이를 온 다른 사람이 없었기에 스님이 우리 부부만을 위해서 따로 차담 시간을 고맙게도 내주신 것이다. 관음사에서 템플스테이를 관장하고 계신 보륜 스님은 관음사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나는 근래에 마음속에 안고 있는 딜레마를 말씀드렸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나오니 인생관이 달라지더군요. 이제는 고요하고 평온한 삶을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삶의 유한함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니 하고 싶은 일들이 갈수록 많아지네요. 나이 60이 넘어 문화예술의 세계에 눈을 떠서 많이 보고 들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평생의 업이었던 방송은 은퇴하고 이제는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는데, 내공 있는 좋은 글을 쓰려면 공부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속 분주해지니 이것도 집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혹여 그것도 욕심이니 버리라는 말씀을 들을까 겁이 났는데, 스님은 오히려 힘을 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것은 집착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자기가 쓴 글을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로 여기고 반긴다면, 그런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은 좋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죠. 나중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런 역할의 결과들을 남기고 가는 것도 선한 영향력이라는 의미가 있을 겁니다.”
힘들어 마음이 무거울 때 찾아가는 템플스테이
차담 시간이 길어졌다. 템플스테이에 오는 사람들로부터 일일이 힘든 사연들을 듣고 상담 아닌 상담을 해주는 일이 얼마나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미안한 생각이 들어 “바쁘실 텐데 이제 저희는 그냥 보내셔도 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보륜 스님은 “그래도 어렵게 오셨는데 조금만 더 얘기 나누시죠.” 하면서 말씀을 이어갔다.
차담 시간 마지막에 보륜 스님이 강조했던 것은 ‘깨어있음’이었다. 비가 오면 차에서 와이퍼를 작동시켜 가는 길의 시야를 분명히 하듯이, 우리도 목표가 분명히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힘든 여건이라 해도 자신이 가는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템플스테이도 깨어있는 정신으로 와야 합니다.”
스님은 이 말씀으로 차담 시간을 마무리했다. 스님이 말씀하신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 나이에 상관없이 소중한 삶의 태도이다. 특히 나이가 많아지면 더 이상 정신의 변화와 성장에서 손 놓고 멈춰버리는 경우들이 많은데, 더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은 우리가 살아있는 한 마지막까지 기울여야 할 존재의 이유일 것이다
템플스테이에는 사는 게 힘들어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스님과의 대화 속에서 알게 됐다. 사찰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고민거리가 있어서 오는 것이고, 스님이 상담을 해주기를 원하는 경우들이 많다고 한다.
흔히 템플스테이 하면 여유 있는 사람들이 다니는 관광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런데 관음사뿐 아니라 내가 올해 다녀본 템플스테이의 경험들을 돌아보면 사람들이 힘든 고민 하나씩 안고 템플스테이에 오더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암에 걸려 마음이 힘들어서 온 사람,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찰을 찾아온 사람, 자신의 힘든 처지를 위로받고 싶어 찾아온 미혼의 젊은 여성 가장, 직장에서의 고민거리가 힘들어서 온 사람……. 다들 사는 게 힘들고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걱정거리가 하나씩은 있구나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찾는 템플스테이가 되기를
그런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마음의 치유를 해줄 수 있는 템플스테이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템플스테이가 많이 대중화되었다고 하지만,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만 갖고 차일피일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많이 본다. 그런 사람들이 템플스테이에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더 많이 홍보되고 사찰마다 좋은 프로그램들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안타까운 것은 한라산 기슭이라는 좋은 위치에 있는 관음사가 더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템플스테이를 확대하지 못하는 사정이었다. 다른 큰 사찰들처럼 템플스테이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려면 템플스테이를 위한 건물을 새로 지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재정 문제가 따랐다. 제주는 특별자치도로 되어 있기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보조금 없이 자치도가 재정을 100% 책임지고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관음사 템플스테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예산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설명을 들으니 많이 아쉬웠다. 제주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온다. 외국인들이 제주 관광을 왔을 때 템플스테이 문화를 접해보는 것도 참 좋은 프로그램이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주 여행을 오는 사람 중에도 한라산 등반을 위해 관음사 탐방로를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관음사 템플스테이도 함께 경험할 수 있다면 제주에 와서 몸과 정신을 함께 돌보는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제약이 안타까웠다.
이 겨울이 지나면 새해에도 템플스테이를 다니게 될 것이다. 다음에는 어떤 사찰로 갈지를 생각하는 것도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관심사가 된 2024년이었다.
유창선 1세대 시사평론가로 세상과 소통하였으며 여러 언론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저술활동을 하였습니다. 투병의 시간 을 거친 이후로는 문화예술의 아름다움을 따뜻한 글로 나누셨습니다. 저서로 『오십에 처음 만나는 예술』, 『나를 찾는 시간』, 『나를 위해 살기로 했다』 등이 있으며 2024년 12월, 향년 64세로 별세하셨습니다.
제주 관음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록북로 660
010-5219-85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