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으로
괴로움을 없애는 유일한 길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글. 박사 사진. 하지권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비 오는 조계사를 바라본다. 시내를 오가다 보면 불교신자든 아니든 한 번쯤 들르게 되는 활기를 가진 절이다. 한동안은 절 마당의 회화나무가 좋아서 일부러 돌아 경내를 가로지르기도 했다. 철마다 때마다 연등으로 국화로 안팎을 밝히는 절. 그렇게 걷다가 뵙고 합장한 스님들 중에 진우 스님도 있었을까. 파란 불이 깜박, 켜진다.
처음 성파 스님을 뵈었던 날의 통도사에도 비가 내렸다. 무여 큰스님을 뵙던 날도 축서사에는 비가 내렸다. 비 오는 절은 평소와는 다른 운치가 있다. 「법성게」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는 허공 가득한 진리의 보
배가 비처럼 내리고,
중생들은 저마다 그릇에 따라 얻는다네.
한 권의 책으로 운명이 바뀌다
소년이 있었다. 강릉의 부유한 집안의 삼대독자였던 여섯 살의 그를 본 태백산 정암사 주지 동헌스님은 아이를 데리고 온 할머니에게 아이가 수명이 짧으니, 절에서 키우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백운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출가하여 강릉 포교당인 관음사와 보현사, 학교를 오가며 호된 행자 생활을 하던 그는 약속한 스무 살이 되면 절을 나갈 수 있으려니 간절히 기대했다. 찢어지는 마음으로 그를 절에 밀어 넣으신 할머니와 한마음으로.
그가 마음을 돌린 것은 열일고여덟 살쯤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는 한 스님의 추천으로 이광수가 쓴 『원효대사』를 읽는다.
“원효대사가 젊을 때 유혹과 세속적인 욕심을 다 이겨내시고 결국은 대승적인 마음으로 밖에 나가서 거지나 도둑 떼 같은 아주 어려운 사람들과 동고동락하면서 그 사람들을 다시 불교에 귀의시키는 모습이, 너무나 대승적이고 자비로우신 스님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죠. 나도 저런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런 거지.”
진우 스님은 그때를 돌이켜보며 “오히려 어렸을 때가 더 어른 같아.” 하시지만, 지금보다 어른 같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소년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효 스님의 진심이 마음 깊이 다가왔던 것 아니었을까. 오매불망 나오기를 기다리던 손자가 계속 절에 남기로 하자 할머니는 가슴 아파하셨지만, 깊은 불심으로 손자가 계속 수행의 길을 가도록 인정해 주셨다고 한다.
스님은 책을 읽고 발심하셨지만, 현재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 것은 한국불교 전통 수행법인 간화선을 기반으로 한 선명상이다. K명상이라고 이름 붙여 여타의 다른 명상과 변별성을 강조한 이 명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대규모의 국제 선명상대회를 여는 한편, 저서와 유튜브, 선명상 프로그램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책을 읽고 발심하셨으면서 왜 지금은 참선에 무게중심을 두신 것일까? 스님은 “내가 책을 멀리하고 선을 하라는 말을 한적은 없고.”라고 먼저 짚으셨다.
“우리 절집 선가에서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는 말이 있어요. 틀에 박힌 문장에 갇히지 말고 그 이상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가라는 뜻이지. ‘교’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고 ‘선’은 달을 뜻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직접봐라, 이런 뜻이죠.
제가 요즘 선명상을 강조하는데, 그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지 말라는 얘기지 책을 보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책을 보면 책에 나온 내용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거기에 갇혀버리면 오히려 막혀버리는 거지. 그런 역작용이 생길 수 있으니 마음으로 바로 직행해라, 직지인심(直旨人心)하라는 말이죠.”
그렇다면 불교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무엇일까. 스님은 옛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산덕 선생님이 번역한 『중론송』과 백운 스님이 쓰신 『양치는 성자』를 추천했다. 진우 스님의 은 사이신 백운 스님의 이 책은 편양 선사의 행적을 소설로 풀어낸 것이다. 서산대사의 의발을 전수받은 편양 언기 선사는 지금 조계종 스님들 95%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이시라고 한다.
또 하나의 책은 신소천 스님이 쓰신 『금강경 강의』다. 이 책을 보고 “정말 정말 감동을 많이 느꼈다.”며 몇 번이고 강조하시며, 스님은 현재 《법보신문》에 연재하고 있고 내년 3월에 책으로 출판할 『금강경』에 관한 글이 신소천 스님의 『금강경강의』를 모티브로 한 것이라 덧붙였다.
K명상, 경험에서 길어올리다
스님께 명상은 어떤 의미일까.
“어릴 때부터 늘 참선을 해왔어요. 보통 우리는 앉아서 하는 좌선을 참선이라고 생각하지만, 참선이라는 게 결국은 선을 참구하는 것이잖아요.
궁극적으로 나의 괴로움을 완전하게 없애는 경지를 선이라 그러거든. 괴로움을 없애려면 분별 망심을 없애야 하는데, 그 분별심이라는 게 인과로 나타나는 게 분별심이거든요. 인과란 부처님께서『화엄경』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가 생기면 다른 반대 하나가 반드시 생기게 되어 있어요. 두 가지 마음이. 그게 마음으로도 생기지만 물리적으로도 똑같이 나타나거든.
해가 뜨면 반드시 해가 져야 한다. 태어나면 죽어야 한다. 이렇듯 인과작용이란 게 시간적으로 다를 뿐이지 하나가 나타나면 반드시 반대 하나가 나타날 것이니, 그걸 분별심이라고 그러거든요. 좋은 마음을 가지면 싫고 나쁜 마음이 또 생긴단 말이야. 이 두 가지 마음이 크면 클수록 업이 두텁다고 하지. 그러니까 완전한 무분별심, 시소작용이 없는, 인과작용이 없는 그런 상태의 마음을 가져야 항상 마음이 평온하거든. 그래서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 서나 누우나 말을 하나 안 하나, 마음이야 여기저기 인연 따라, 연기 따라서 움직이지만 마음은 늘 평온해야 된다고. 물과 같이. 물이라는 게 항상 수평을 이루잖아. 그런 것처럼 마음도 그래야 돼. 아무리 기울이고 거꾸로 엎어놓아도 물은 항상 수평을 유지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항상 수평을 유지해야 돼요. 그게 바로 선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선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괴롭지 않으니까.”
정말 선명상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많이 도움이 될까. 무엇보다 스님의 경험이 궁금했다. 스님은 파안대소했다.
“당연히 그렇죠. 총무원장이라는 소임 자체가 이름만 총무원장이 아니잖아요. 모든 것을 다 결정하고 해결하고 방지하고 예방하고, 이런 게 다 총무원장의 소임인데, 평상심이 안 되면 스트레스받아 죽을 거야. 아마.”
고통의 바다, 그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총무원장이라는 자리는 조계종의 가장 중심에 있는 자리다. 불교계 안팎이 모두 환하게 보이는 자리일 것이고, 앉은 자리에서 만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자리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서 본 중생의 고통, 바로 지금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일까?
“우리 각자 개개인의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면 부딪치게 되고 그것이 사회 갈등으로 이어지고 시비가 생겨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요즘에는 물질적으로는 굉장히 풍요로워졌지만 거기에 따르는 불평등 문제, 소외계층 문제 등 상대적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회환경이 만들어졌거든. 그리고 사람들이 경쟁심이 너무 강해지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 생존해야 하니까 그런 데서 오는 상대적인 박탈감과 고통이 많이 생겨나죠. 환경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해서 그 고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스스로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부족하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죠. 선명상을 보급하는 이유는 각 국민 개개인, 특히 우리 불자 개개인이 전부 선심을 가져라, 평상심을 가져라,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해라, 그런 측면에서예요. 그걸 종단적으로 해야 우리 불교도 중흥이 되고 불자들도 많이 늘어나고 불자들이 많이 늘어서 부처님 법을 잘 행하면 사회도 평안해지고 나라도 강해지거든.”
그렇지만 선명상으로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불교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에게, 갈증으로 바싹 마른 입에 무엇을 떨어뜨려 줄 수 있을까?
“그냥 뭘 해라, 라고 하면 사람들은 뭘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소에게 물을 먹이려면 일단 물가로 데려가야 하니까, 불교박람회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템플스테이와 같은 기회를 만들어서 젊은이들이 불교와 선명상에 접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마련해주는 거죠. 얼마 전에 <나는 절로>라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서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도록 했잖아요. 일단 관심 갖고 와서 보면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접할수 있으니까. 그렇게 접하게 되면 불교가 뭔지, 선명상이 뭔지, 내 마음을 왜 닦아야 하는지 알게 될수 있으니 본인들이 선택을 하겠죠. 그럼 한번 해볼까 하며 자기가 체험을 할 거 아니야. 그러면 그게 불교나 선명상을 하는 이유와 목적이 되는 거죠.”
K명상, 궁극적인 해결을 향하여
진우 스님은 K명상을 널리 알리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명상가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K명상이 다른 명상들과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셨을까?
“지금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 명상은 카밧진 박사가 운영하고 있는 마인드풀니스, 마음챙김 명상이라고 하죠. 그게 대표적이에요.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는 여러 가지 기법을 써서 명상을 하죠.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그런 기법들은 잠깐의 효과는 있겠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주창하고 있는 K명상은 재료를 제공해서 그 재료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어요. 분별심이라는 게 두가지 마음이잖아요. 즐거움을 추구하면 그 즐거움이 나타난 만큼 괴로움도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이건 구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서양의 마인드풀니스, 마음챙김 같은 명상을 보면, 자꾸 예쁜 것, 아름다운 것, 좋은 것, 이런걸 한쪽만 선택을 해. 그러면 절대 해결할 수가 없어요. 더 예쁜 것이 나타나면 이전에 예쁜 건 상대적으로 덜 예쁜 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게 계속 반복되는 명상이기 때문에, 이 명상을 좋다고 할 수는 없다고 봐요.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지금 내가 주창하고 있는 K선명상은 이쪽저쪽이라는 분별심을 없애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감정 저 감정 일어나는 두 감정을 둘 다없애야 된다. 둘 다 사라지게 하면, 마음을 고요히 하면 인과가 일단 안 생겨요. 좋은 것을 취하면 싫은 것이 당연히 생기기 때문에 언젠가는 싫은 것으로 내가 고통받아요. 애초에 그런 마음을 내지마라. 그렇게 하려면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나간 것은 그냥 지나간 것으로 치부하고 더 이상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항상 고요하게 유지시켜야 해요. 그것이 K선명상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감정이 요동치면 괴로움의 악순환이 일어나요. 이 악순환을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그러거든. 그런 걸 안 하려면 일단은 좋다 싫다는 분별 감정을 갖지 말아야 해요. 세상은 먼지 하나에서부터 이 우주 만법이 서로 연결되어 얽히고설키고 인연 연기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에 어떤 것이 옳다 어떤 것이 그르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할 수가 없어요.
태풍도 자연 연기 현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지진도 마찬가지고. 이게 다 원인과 결과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라서 어떤 것이 원인이고 어떤것이 결과라고 규정지을 수가 없는 거야. 그러니까 거기에 너무 연연하면 그때는 내 마음만 복잡해집니다.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지진이 일어나면 지진이 일어나는 대로, 태풍이 불면 태풍이 부는 대로 거기에 내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해요. 마음을 고요히 하고 평안하게 해라. 그게 선의 본질이에요.”
그러나 행복하고 싶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일까?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이라는 개념은 결이 달라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얻으려고 하는 거잖아. 돈을 많이 벌고싶다, 그러면 돈이 생겨야 행복해지잖아.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가 잘되어야 행복해지잖아.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가 잘돼야 행복해지잖아. 그런데 그건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내가 태어났어, 오래 살고 안 죽고 싶어, 그런다고 안 죽나? 지금 젊어, 나 안 늙고 싶어, 그런다고 안 늙나? 불가능한 거예요. 사람들이 왜 불행하고 왜 괴롭냐면 불가능한 것을 바라다보니 실망하고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런 행복은 세상에 없어요. 그런데 자꾸 행복해지고 싶다고 해서 행복해지냐고. 행복이다불행이다, 이 두 가지 분별된 마음 모두를 없애야 그걸 이름하여 행복이라 한다, 그게 불교의 가르침이에요. 내가 태어나서 안 죽고 싶어, 그러면 물리적으로 안 죽을 수는 없어요. 그러나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괴로워하는 것은 없애준다는 얘기지. 태어나고 죽고 생겨나고 없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해.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마음도 그렇고. 그러니까 너무나 당연한 것을 당연하구나, 라고 깨달으면 편안해지는 거예요. 편안해지고 괴로움이 사라지는 거야. 그것이 불교지. 그게 진짜 행복이지.”
있는 그대로, 흐르는 물처럼
인터뷰가 끝나고 조계사 마당으로 나오니 빗방울은 거의 잦아들고 있었다.
대웅전 안팎에서 기도하고 있던 신자들이 스님을 보자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 풍경을, 회화나무에서 투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조계사 절 마당을 가득 메운 의자들을, 갖가지 이유로 절에 발을 디뎠다가 또 각자의 이유로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고통은 잦아들 수 있을 까, 생각한다. 저 모든 굽이와 굴곡을 메우며 당연한 듯 제 갈 길을 가는 빗줄기처럼.
박사 북칼럼니스트. ‘불교덕후’로도 유명하다. 방송과 일간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책과 문화를 소개해 왔으며, ‘책 듣는 밤’ ‘책 듣는 저녁’으로 대중과 만났다. 『나에게, 여행을』, 『가꾼다는 것』,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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